환경부의 일회용품 규제 완화, 그 후 벌어진 '기이한 역주행'
[알맹상점]
2022년 11월 24일, 환경부는 일회용품 사용금지 규제를 확대 시행하겠다고 하였으나 1년의 단속 유예기간을 두었다. 당장 시행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단속 유예가 종료되는 시점인 2023년 11월 23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1월 7일, 환경부는 또다시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 및 유예했다.
환경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완화·유예가 발표된 11월 7일, 국회에서는 자원순환 사회 형성을 위한 유리병 재사용 체계 마련을 요구하는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는 추후 활동 논의를 위해 국회 소통관 1층 카페를 찾았다. 이때,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이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20231107 국회 내부 위탁 운영 카페 A 카페 A의 매장 내 종이컵 및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모습 |
ⓒ 성예람 |
▲ 20231107 국회 내부 위탁 운영 카페 A 카페 A의 매장 내 종이컵 사용 모습 |
ⓒ 성예람 |
국회 내부 카페에서 남발되는 일회용품에 대해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여, 국회사무처 운영지원과에서 민원 사항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국회 내부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질문에 국회 관계자는 '국회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카페는 모두 매장 내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도, '소통관 1층 A의 경우 국회에 사용허가 입찰을 통하여 입점한 민간 업체다. 이전에도 해당 매장의 일회용 컵 사용에 대한 민원이 있어 국회에서는 해당 점주에게 매장 내 이용객에게는 다회용 컵을 제공하도록 권고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국회 내에 입점해 있는 민간 업체의 경우에는 국회에서 최대한 강력하게 권고하겠으나 강제할 수는 없는 부분임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국회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는 국회'의 답변은 소극적이라 느껴졌으며, 입법·대의 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업체라도 국회 내부에 위치한다면 당연히 국회의 관리 감독을 통해 일회용품 사용 절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강력한 권고'로 해결될 사안이었다면, 왜 이전에도 동일한 민원이 발생했겠는가. 국회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회 직영 운영 카페들은?
'국회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카페는 모두 매장 내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라는 국회의 답변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12월 7일 국회 내부의 카페들을 방문하였다. 공교롭게도 환경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완화·유예 발표 후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 20231207 국회 내부 카페 5곳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현황 |
ⓒ 성예람 |
▲ 20231207 국회 내부 카페 일회용 컵 사용 현장 사진 |
ⓒ 성예람 |
환경부는 여전히 '자발적 감량' 추진, 그러나 현장은
환경부의 종이컵 사용 규제 완화 발표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식당과 카페에서 다회용 컵 대신 일회용 컵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2월 1일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환경부는 '지속가능한 일회용품 관리 정책 마련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이번 개선방안이 획일적 규제가 아닌 자율적 감량의 체계(패러다임) 전환임을 설명하고, 현장에 안착된 규제를 유지하되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매장 내 종이컵 사용하는 카페 및 식당 ‘매장 내 일회용 컵 쓰는 카페, 식당 모아보아요!’ 캠페인에 제보된 익명의 카페와 식당 |
ⓒ 성예람 |
'매장 내 일회용 컵 쓰는 카페, 식당 모아보아요!' 캠페인에 참여한 ㄱ씨는 "11월 전에는 머그컵을 사용했는데 이번에 갔더니 매장 내에서 뜨거운 음료를 테이크 아웃 종이컵에 담아서 서빙하더라"며 한 카페 내부 테이블 위 테이크 아웃용 종이컵 사진을 공유했다. ㄴ씨는 익명의 식당에서 제공된 식수용 종이컵 사진을 공유하며 "이 가게는 11월 23일까지 (종이컵을) 쓰고 안 쓰겠다고 했었는데 규제가 유예되자 계속 쓴다"라며 문제점을 꼬집었다.
환경부의 바람과 현장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 식당과 카페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자발적으로 절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규제 완화와 동시에 다회용 컵을 사용하던 매장에서조차 일회용 컵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아이러니한 모습만이 목격될 뿐이었다. 기이한 '역주행'은 일회용품 규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사업장의 자발적 감량이 얼마나 실효성 없는 대책인지 확인시켜 주었다.
일회용품 규제, 질타받더라도 '해야만 한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생각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일회용품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만능열쇠'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문까지 여는 '만능열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식당과 카페에서 다회용품을 사용하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인력이 필요하니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일회용품을 처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 재활용·소각·매립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훨씬 크다. 당장 눈앞의 손익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023년 11월에 발간된 그린피스의 보고서 <재사용이 미래다>에서 '다회용 컵 사용 시 잠재적 환경 저감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버려지는 연간 84억 개의 일회용 컵이 다회용 컵으로 전환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환경영향을 저감할 수 있다고 하였다.
- 한국에서 1년 동안 9만 2000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양 또는 성목 1130만 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양 (2억 5000만 kg 이상의 탄소(CO2-Eq) 절감)
- 올림픽 공식 규격 수영장(3750 m3 ) 480개 이상을 채우는 양 (180만 m3 이상의 물 절약)
- 석유 100만 배럴 이상 (1억 4000만 kg 이상의 석유-Eq 절감)
규제 없이 일회용품 사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냉담함을 간과한 해맑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환경부 청사 앞 카페, 식당만 확인하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회용품 사용 실태를 말이다.
'디지털 시민광장, 캠페인즈' 홈페이지에서 매장 내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는 식당과 카페를 찾아 업로드하는 '#일회용컵있는지도'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일회용컵있는지도'는 환경부의 일회용품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캠페인이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국회와 환경부에 맞서 시민들이 직접 감시자 역할을 맡은 것이다. 캠페인 참여 방법은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작성 | 알맹상점 매니저&캠페이너 성예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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