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리스크에 빠진 리모델링…"추진 단지 갈등 불가피"
서울·1기 신도시서 리모델링 포기 단지 늘어날 듯
리모델링 사업 수주 건설사도 난감
“이 정도면 리모델링을 하지 말란 이야기죠.”
서울과 수도권 등에서 아파트 리모델링을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던 단지들이 잇단 정책 리스크로 혼란에 빠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리모델링에 대한 2차 안전진단 등의 규제는 강화된 반면, 10일 발표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추진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정비업계에서는 상당수 단지가 재건축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 단지들은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허용된다. 이에 따라 재건축 사업 기간이 최대 5~6년 단축되고 전국 95만 가구의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리모델링 사업은 위축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해 하반기 발표된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따라 1차 안전진단만으로 추진이 가능했던 수평증축은 앞으로 수직증축처럼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 등 규제가 강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거나 예정인 단지들이 시끄럽다.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리모델링을 선택했던 단지들이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할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재개발을 요구하는 소유주와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당장 서울에서 리모델링 포기 단지가 속출할 전망이다. 서울시와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 내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는 총 76곳인데, 이 중 22곳이 사업계획 변경 또는 추가 안정성 검토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들 단지 중 상당수가 재건축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많은 1기 신도시도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작년 말 기준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추진 현황(부동산R114 집계)을 보면 5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도시 전체 353개 단지 중 29개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재개발을 원하는 조합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실제로 리모델링 사업 승인을 받은 성남시 분당구의 한솔마을 5단지가 시끄러운 분위기다. 앞서 이 단지는 재건축 선회를 요구하는 소유주들과의 마찰이 있었던 터라 이번 정부 발표로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리모델링을 진행 중인 단지의 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재건축을 저렇게 풀어버리면 누가 리모델링을 하려고 하냐”며 “벌써 조합으로 리모델링 해산 요청이 빗발치고 있으며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는 재건축 추진위 등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고 토로했다.
리모델링 단지 사업을 수주해 놓은 건설사 관계자는 “도대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진행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1기 신도시 중 30년이 넘은 아파트만 당장 30만 가구가량인데, 이를 어떻게 재건축하겠다는 건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 그래도 아파트 밀집으로 베드타운이 된 1기 신도시의 경우 재건축을 대거 진행하려면 상하수도, 전력공급, 교통인프라 등 제반시설부터 새로 설계해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며 “한마디로 도시를 싹 뒤집어 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990년대 이전 아파트들은 지하주차장 확보 등으로 리모델링 공사비가 많이 들어 재건축 대비 가격 면에서 이점이 크지 않다”면서 “이번 정부 방침에 따라 재건축 인허가가 수월해진다면 굳이 리모델링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재건축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가 지역별로 얼마나 적용되는지는 미정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안전진단 완화는 도시정비법 개정사항으로 국회 여야 합의가 없으면 실거주 의무 폐지가 통과되지 않는 것처럼 ‘불발’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했다.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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