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검사·남성... 환호받는 '정치 신인' 한국엔 없는 이유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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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근]
▲ 규제 중심의 공직선거법은 수차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 신인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
ⓒ 셔터스톡 |
영화 <서울의 봄>이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심박수 챌린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이 영화의 힘은 연출진에게도 있지만 오진호 소령 역을 맡은 정해인과 같은 젊은 배우들과 이태신 역의 정우성, 전두광 역의 황정민, 정상호 역의 이성민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배우의 상당수는 한예종 등 교육기관이나 여러 극단을 통해 육성되어 왔다. 종종 기성 교육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데뷔해 크게 성장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소속사 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으로 양성되는 경우가 많다. 가요계도 비슷하다. 뉴진스, ITZY, Black Pink, BTS 등 K-pop을 이끌고 있는 팀들도 소속사 및 기획사의 중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한 경우다.
이제 정치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의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은 어떻게 충원되고 있는가? 우리나라 정당들은 과연 '시대 정신'을 정확히 읽고 인품은 물론 능력과 의지를 갖춘 국민의 '대표자'를 제대로 양성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며, 정치개혁을 이야기할 때 정치 신인으로 구태 정치인을 교체하자는 요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민주화된 지 3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를 우려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 신인'을 충원하는 시스템의 결여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기성' 정치인을 '신인'으로 대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국민들에 의해 검증된 경험과 지혜를 갖춘 원숙한 기성 정치인들도 필요하다. 문제는 정당 스스로 미래의 정치인을 양성하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하는 정치 신인들조차 국민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임박한 지금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정치 신인의 재정 부담
정치 신인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지역구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자는 등록을 위해 일정 규모(300~500인)의 추천장과 기탁금이 필요하다. 후보자 기탁금은 지역구는 1500만 원, 비례대표는 500만 원이다. 이는 기초자치단체장 1천만 원, 광역의원 300만 원, 기초의원 후보 200만 원이라는 점에 견주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통령 3억 원, 시도지사 후보 5천만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다지 많은 액수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현행 선거법은 장애인은 기탁금의 50%, 39세 이하는 70%만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배려' 대상에 정작 재정적인 부담을 가장 많이 느끼는 저소득층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부담해야 할 경선 비용과 선거운동 비용을 고려하면 정치 신인의 재정 부담은 결코 적지 않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구 평균 선거인수 20만 3천 명을 기준으로 선거비용 제한액을 계산해 보면, 당선권에 진입하기 위해 후보자들은 대략 2억 원의 선거운동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 종사자, 성공한 경영인, 상당한 자산의 상속자가 아니면 국회의원 출마 자체에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23년 12월 21일 국회 본회의장 모습. |
ⓒ 남소연 |
그나마 주요 정당들은 일부 전략공천 지역을 제외하고 '개방형' 경선 제도를 도입하여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정치 신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지역구 후보 경선에서 시민이 후보 선출권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주요 정당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정치 신인에게 우선순위 또는 가산점을 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은 당규에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심사를 할 때 "직능, 세대, 성, 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안분하되, 정치 신인을 우선 추천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후보 경선에서 정치 신인에게는 10~20%의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힘 또한 지방선거 후보자 경선에서 정치 신인이 여성이나 청년과 마찬가지로 최대 20%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당규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정치 신인 우대 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국민들이 기대하는 '신인'은 경선에서 현역 의원을 이기고 공천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에 도전하는 것은 마치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과 같다. 정치 신인들은 현직 의원들과 달리 보좌진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현역 의원들은 긴밀하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지방의회 의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시도당위원회 등에서 당직을 맡으면서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정치 신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유력한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형성된 당내 계파에 참여하여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정치 신인이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신인 배우가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고 신인 가수가 무대에 서듯이 정치 신인들에게도 자신을 알릴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후보 경선에서 선출권을 행사하는 당원들을 접촉하는 데 필요한 당원 명부는 볼 수가 없다. 후보 선출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의원들은 사실상 임명 과정부터 현역 의원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그나마 정치 신인들이 자신의 경쟁력을 알리는 거의 유일한 '창'이라고 할 수 있는 건 TV 토론회인데, 현직 의원들이 여러 핑계를 대며 불참해 효과가 반감하기도 한다.
규제 중심의 공직선거법은 수차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 신인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현수막과 인쇄물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선거일 120일 전부터 가능하다. 그런데 현역 의원들은 의정활동 보고회를 통해 언제든지 유권자들을 만나고 무제한으로 문자를 발송할 수 있으며, 길거리에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후원금도 차등을 두어 현역 의원들은 정치 신인보다 2배나 많은 3억 원을 모금할 수 있다. 2023년 3월 10일이 기한인 선거구 획정을 아직도 하지 않아 선거운동은 물론 출마 지역조차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 또한 현역 의원보다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에게 훨씬 큰 고통을 주고 있다.
▲ 현역 의원들은 의정활동 보고회를 통해 언제든지 유권자들을 만나고, 길거리에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 걸린 정당 현수막들. |
ⓒ 연합뉴스 |
그렇지만 한국은 국회의원의 재선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제21대 국회는 초선 의원이 156명으로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다(52.2%). 재선 69명(23.1%), 3선 41명(13.7%), 4선 이상 32명(11.0%) 등 선수 구성은 피라미드 구조이다. 이 수치만 보면 대한민국 국회의 문턱은 정치 신인들에게 매우 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착시 현상'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의 연령은 지극히 중년 편향적이다. 50대가 177명(59.0%)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 60대 이상 69명(24.0%), 40대 38명(12.7%) 순이다. 30대 이하는 13명(4.4%)으로 가장 적다. 여성 의원은 불과 51명(19.0%)으로 남성 의원보다 5배나 적다. 국회의원이 되려는 정치 신인은 50대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여성은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탄식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이 공천한 정치신인들의 상황은 더욱 비관적이다.
정당들이 영입하는 인사들이 과도하게 법조계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민의힘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함으로써 향후 검찰 출신이 상당수 공천될 것이라고 언론은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제21대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이 46명(15.3%)이고 이들 가운데 검사 출신이 15명이나 된다. 검사 출신이 변호사 출신 20명보다 적지만, 판사 출신 8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가 27명(9.0%)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 국회는 고시를 통과한 법조계와 정부 고위 관료 출신 위주로 충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인 양성 프로그램 없고, 비례 공천 비민주적
우리나라 국회의원 재선율이 낮은 이유가 정치 신인들이 현역 의원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비례대표 의원을 재공천하지 않는 정당들의 관행과 의정활동이 '나쁜' 일부 현역 의원들을 걸러내는 공천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대체할 유능한 정치 신인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 공천하는 정치 신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당이 키워낸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정당에 대한 충성심과 정체성이 검증되지 않은 소위 '스펙'이 좋은 엘리트거나,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와의 '인맥'이 좋은 외부 '영입' 인사들이다. 일반 당원이 지역 정당 조직에서 헌신하며, 민주적 경선을 통해 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실상 접어야 한다.
아울러 비례대표가 정치 신인이 등장할 수 있는 주요 무대가 되고 있지만,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되는 인사들은 주로 당 지도부가 선택한 인물들이다. 당원에게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할 권한은 부여되었지만, 사실상 선거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 비례대표 선거제도는 '개방형'이 아니라 '폐쇄형'이다.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후보가 아니라 정당에게 투표하고, 정당의 득표율과 정당이 정한 순번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되는 것이다.
▲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2020년 4월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성심여중·여고 체육관에 설치된 원효로제2동 제3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 유성호 |
우리나라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치 신인을 충원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먼저, 정치 신인 양성을 위해 당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전략 공천이나 우선 공천에 의존하기보다 정치 신인이 기성 정치인과 실질적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당내 계파의 수장에게 '줄서기'를 하지 않아도 경선을 통해 공천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이 정치에 도전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 교육과 당원 교육을 활성화하고 국회를 비롯한 정치 기관에 대한 신뢰도 또한 제고할 필요가 있다. 공천 심사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로부터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후보를 추천받아 공천에 반영하여 정치 신인의 공급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검찰·경찰·국정원의 정치화 및 정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도록 공안기관 출신 인사들의 정당 가입이나 공직 출마를 퇴직 후 일정 기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지병근 /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지병근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민교협)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 영역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을 사례로 민주화 이후의 선거 및 정당 정치를 정치제도와 행태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지역발전과 고등교육 정책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선거학회장(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전)을 역임한 바 있으며, 주요 (편)저서로는 <여론과 정치>, <김대중·노무현 정부시기의 선거>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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