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들쑥날쑥…고무줄 안전진단

한진주 2024. 1. 1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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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급 확대방안'에서 완화 예고
재건축 물량 조절 도구로 전락
사실상 통과의례…노후도 비중 높일 듯
환경개선·공급확대 vs 자원낭비·도시과밀

윤석열 정부가 지난 10일 30년 지난 아파트에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사업을 허용하겠다고 하자, 정권에 따라 안전진단 기준이 고무줄처럼 바뀌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건축물의 안전 여부를 진단해 재건축 사업의 필요성을 타진하는 절차가 정권의 기조에 따른 재건축 물량 조절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정부가 내놓은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은 안전진단이라는 대못을 뽑아버린 것을 핵심으로 볼 수 있다. 30년을 넘긴 아파트 1195만 가구 중 15%(173만 가구)가 재건축 착수 대상이 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따른 주택 공급 부족과 고금리·고물가 등에 따른 시장 위축을 바로잡기 위해 내놓은 조치다.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로 재건축이 남발되면 자원 낭비 등 환경문제, 수도권 쏠림 심화, 도시 과밀로 인한 주거환경 악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안전진단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라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위해 건축물의 구조안전성, 주거환경, 설비 노후도, 비용편익 항목을 점검하는 절차로 2003년 도입됐다. 하지만 정권의 목적에 따라 그 기준의 높낮이가 고무줄처럼 바뀌었다. 구조안정성 항목 평가 비중은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는데 45%에서 50%까지 상향되었다가 박근혜 정부 때 20%까지 낮아졌다. 그러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문재인 정부 때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50%까지 높였다. 목동 9·11단지, 고덕주공9단지, 태릉우성, 광장극동아파트 등이 당시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했다.

현 정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안전진단 폐지를 내세웠고 국토부는 2022년 12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방안’을 내놨다. ‘구조안정성’ 평가항목 비중은 50%에서 30%로, 재건축 허용 점수 기준도 30점에서 45점 이하로 완화했다. 정부는 전날 발표에 이은 추가 조치로 안전진단 평가 항목 기준도 한 차례 더 완화할 것을 예고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후도에 따른 주거환경, 설비 노후도를 중심으로 안전진단을 정비할 필요는 있다"며 "여기에 초점 맞출 수 있도록 안전진단제도를 전문가 의견 토대로 추가로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전진단을 사실상 통과의례로 바꾸는 것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안전진단 업계는 안전성이나 기술적인 판단 없이 경과년수만으로 판단할 경우 건축물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제7차 건설기술진흥 기본계획(2023~2027)’에서도 정밀안전진단을 30년이 지난 2·3종 노후시설물까지 실시해도 명시한 것과도 상충한다. 시설안전협회 관계자는 "사용 연수만으로 무분별하게 재건축을 시행한다면 구조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아파트들도 너도나도 재건축을 시행하게 될 것이고 철거에 따른 건설폐기물 처리에 따른 심각한 환경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며 "안전진단으로 노후도 충족 여부를 검증하고 결과에 따라 사업 시기나 우선순위를 조정해 시설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건축 규제를 풀어 ‘안전성’보다 ‘노후도’를 중점으로 재건축 여부를 정할 경우 사업 속도는 빨라지겠으나 장기적으로 도시 과밀이나 재난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건설안전학회장인 안홍섭 군산대 명예교수는 "경제적 동기를 억누를 수 없고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리는 것인데 결국 49대 51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하는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지금도 서울은 고밀화 상태인데 용적률이 높아지면 도시의 주거환경이 열악해진다. 도시 고밀화로 재난에 취약해질 수 있고 환경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차희성 아주대 교수는 "주거환경 개선 측면에서 안전진단으로 틀어막기보다는 국민 전체 편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도 "용적률을 높여주고 수도권 일부 밀집 지역에서만 재건축이 이뤄지면 수도권은 인구과밀, 지방 소멸로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고 과밀화나 주택 사이클 등을 고려해야 한다. 주거환경 개선 면에서 교통정책이나 공지 확보 등 도시계획의 좋은 아이디어를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획의 좋은 아이디어를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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