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거장이 은퇴하면서 꼭 전하고 싶었던 말

장혜령 2024. 1. 1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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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장혜령 기자]

 영화 <나의 올드 오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88세 '켄 로치' 감독의 60년을 정리하는 은퇴작이다. 지난 인터뷰를 통해 마지막 장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사회 부조리와 대립, 혐오, 차별이 계속되는 한. 거장은 또다시 카메라를 들 거라 생각한다. 이번 영화는 사회적 약자인 두 집단이자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부당함을 통해 대립이 아닌 연대로 나아가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에 이은 영국 북동부 3부작이다. 유럽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불리는 난민과 경제적 고립 지역을 무대로 한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비전문 배우 캐스팅이 잦아 캐스팅 될 때마다 화제다.

켄로치 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소방관 출신의 '데이브 터너'가 마음씨 좋은 TJ 역에 낙점되었다. 그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다니엘이 이력서를 돌리는 업체 사장으로 등장했고,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리키의 택배 고객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보였다. 라야 역의 '에블라 마리'는 시리아 배우 오디션에 뽑혀 캐스팅되었으며 실제 북동부 지역에 정착한 시리아 가족을 캐스팅해 현실감을 높였다.

영국 폐광촌으로 이주한 시리아 난민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 영화사 진진
 
한때 번성했던 광산이 문 닫자 급속도로 침체된 마을의 하나뿐인 펍 '올드 오크'는 유일하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사랑방이다. 삐거덕거리는 펍 간판을 대걸레로 매번 올려야 할 정도로 노후된 가게다. 가난한 펍 주인 TJ(데이브 터너)는 몇몇 단골이 찾아주는 덕분에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배고프고 할 일 없는 아이들은 거리를 배회하고 오른 물가에 성난 주민들은 여유 없이 메말라 간다.

올드 오크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했다. 20년 전에는 탄광 축제, 광부 파업, 결혼식, 투표, 공부방 등 마을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광부였던 TJ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다시 개장하기에는 이곳저곳 손봐야 했고, 보험도 들어놓지 않아 위험했다. TJ(데이브 터너)는 일부 공간만 운영하며, 응접실 문은 굳게 닫아 두고 있었다.

한편, 전쟁을 피해 폐광촌에 이주해온 시리아 난민 야라(에블라 마리)는 마을의 적대적인 분위기에 한껏 움츠러들었다. 첫날부터 아버지가 준 소중한 카메라를 떨어트려 속상했었지만 작은 온정으로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TJ와 야라는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다르지만 '사진'을 통해 우정을 쌓으며 아픔을 보듬어 간다. 약한 자만이 소외된 자의 고충을 잘 알뿐더러, 서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화합의 분위기를 시기하는 원주민도 있었다. 젊은이들이 떠나자 학교, 교회도 없어졌고 공동체가 모일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대안으로 올드 오크 응접실 대여를 제안했지만 JT는 단박에 거절한다. 단골은 안 된다면서 낯선 난민은 환영하는 모습은 오해와 갈등을 불렀다. 마을 주민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분열되어만 갔다.

탄광이 문을 닫자 모든 게 달라졌다. 쓸쓸한 마을 분위기도 속상한데 집값까지 내려갔다. 여생을 편안하게 살려고 마련한 집은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정부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않는 외진 곳이란 이유로 난민 이주를 허가하며 빈집을 채워간다. 이곳을 지켜오던 원주민은 더 이상 손해 보고 싶지 않았고, 그럴수록 난민과의 골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함께 먹으면 더욱 강해진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영화는 '함께 모여 밥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연대의 상징으로 삼았다. 폐광촌으로 경제적 위기를 맞은 마을 주민과 고문과 전쟁을 피해 온 난민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았다. 원주민은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며 혐오와 배척을 일삼았다.

하지만 조촐한 식사 이후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음식은 문화와 정체성으로도 연결되는데 단순히 함께 먹는 행위만으로도 슬픔을 위로하는 가장 쉬운 매개다. 슬픔의 종류는 달랐지만 아픔을 위로하는 용기와 믿음은 같은 곳을 향한다. 부자 동네에는 난민을 들이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떠올려 볼 때, 힘든 세상에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함께하는 행동임을 증명하게 되었다.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고 타인을 알아가는 어울림의 촉매제가 바로 맛있는 음식인 셈이다. 마을의 상징인 참나무 펍은 난민, 결식아동, 노인, 빈민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다.

노골적인 설정이지만 이기주의와 혐오를 상대로 화합을 강조한다. 직설적인 말, 행동, 캐릭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형적인 빌런 단골 중년 4인방도 나중에는 정이 들 정도다. 그들은 시종일관 TJ가 하는 일을 불만 섞인 어조로 비꼬지만 결코 욕할 수 없다. 그들도 엄연한 피해자이기 때문에 양쪽 상황이 모두 이해되며 씁쓸해진다. 삶이 힘들 때 약자를 찾아 분풀이하는 행동은 치졸하지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난민 이슈'는 개인의 친절이 모여 공동체, 국가로 나아가, 전체 시스템을 움직여야만 한다.

켄 로치 감독이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다. 타인을 향한 이해의 첫걸음은 작은 관심이 아닐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왔다면 <나의 올드 오크>는 난민 이슈의 교본으로 정교화 되었다. 대립만 하던 두 공동체가 이해하려는 노력, 정부의 올바른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변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희망을 보여준다. 다만, 우리에게는 낯선 난민 이야기를 탈북민, 중국인 등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훨씬 공감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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