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개 사업장 600곳 채권기관' 복잡한 태영 워크아웃

임정수 2024. 1.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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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연기금 등 채권회사 다양
PF 사업장별 대주단 금융회사 수도 많아
담보·사업상황 따라 이해관계 엇갈릴 듯

"법정관리로 가면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 역사상 이해관계가 가장 복잡한 워크아웃이 될 것이다." 국내 한 금융회사의 고위 임원은 이번 워크아웃 추진 과정에서 나온 채권·채무 관계와 워크아웃 채권의 방대한 범위 등을 두고 이같이 예상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문제 등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채권자 설명회를 마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설명회에서 경영진의 실책을 인정하고, 워크아웃 동의 등을 요청했지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자구안을 추가로 달라고 요구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채권단은 11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여부를 결정한다. 직접 채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채무를 합쳐 총 21조원 규모의 채권을 보유한 약 600개의 금융회사가 투표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영건설이 책임준공만 제공한 사업장까지 모두 보증채무에 포함돼, 워크아웃이 통과되더라도 국내 역사상 가장 난해한 워크아웃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태영 직접채무 1.3조‥담보 및 상환우선순위 따라 이해관계 달라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워크아웃이 통과되면 채권단은 1조3000억원 규모의 태영건설 직접 채무는 물론 120여개 PF 사업장에 엮인 21조원어치의 보증채무에 대한 이해관계를 풀어야 한다. 태영건설이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빌린 직접 채무는 일반대출, 회사채, 부동산담보대출(여의도 사옥), 주식담보대출, 기업어음(CP) 등으로 분류된다.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은행권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건설공제조합 등이 태영에 직접 돈을 빌려줬다. 모회사인 TY홀딩스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사모채권을 발행해 태영건설에 다시 빌려준 4000억원도 직접 채무에 포함돼 있다.

이 외에도 화성동탄2신도시, 수원당수공공주택, 창원자족형복합행정타운 등의 사업장에서 빌린 차입금도 있다. 각 대출의 만기와 담보가 다르고 PF 사업장의 경우 미착공 현장 등 사업 진행 상태에도 차이가 있다. 또 대출 별로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 등으로 채권자별 차입금 상환 우선순위도 나뉘어 있다. 화성동탄 사업장과 여의도 사옥 담보대출 채권자도 각각 10곳을 넘어서고 채권별 담보 및 상환 우선순위도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각 대출에 엮인 채권자 수도 많다. 일례로 수원당수공공주택 사업장에는 신용협동조합(신협) 지점 50여곳이 나눠 대출해 준 상태다. 신협중앙회 차원에서 의견 일치를 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워크아웃 단계별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다. 이 사업장은 착공 전 단계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분양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한 금융회사 IB 담당 임원은 "워크아웃이 개시되고 차입금 상환유예, 원리금 감면, 출자전환 등의 채무 재조정이나 채권단 추가 자금 투입 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별로 여러 의견이 부닥치는 일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고차 방정식을 풀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보증채무 사업장만 120여개…1개 사업장에 수십 개 채권기관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하는 PF 사업장에 대한 보증 채무로 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연대보증, 지급보증, 채무 인수는 물론 책임준공을 제공한 PF 사업장까지 모두 워크아웃 채권에 포함됐다. 사업장 수만 120여개로, 보증 제공 건수는 945건, 보증 규모는 19조84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 중 태영건설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PF 우발채무는 9조5000억원 규모다.

보증 채무는 사업장별 대주단끼리 자율협약 방식으로 의견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PF 사업장은 해당 사업의 공사 진행단계, 분양성과, 담보가치가 모두 다르다. 태영건설과 절연된 시행사업자가 존재하고, 태영건설 단독 시공뿐 아니라 다른 건설사와 공동으로 시공하는 사업장도 있다. 증권사 PF 담당 임원은 "PF 사업장 대주단 간 의견일치도 쉽지 않고, 시행사와 시공사 상황도 모두 다르다"면서 "보증채무가 아닌 일반 채무를 보유한 채권 금융기관들과의 이견도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보증 사업장에 엮인 채권 금융회사 수도 대부분 10곳을 넘어선다. 태영건설이 시공하는 김포 풍무역세권 도시개발 사업의 경우 산업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등의 은행권은 물론 농협생명, KB손해보험, 동양생명, 신한라이프, 미래에셋생명, 코리안리 등의 보험사와 롯데카드, 산은캐피탈, IBK캐피탈, NH캐피탈 등의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까지 18곳의 대주단이 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 상호금융의 경우 지점이나 단위조합들이 한 사업장에 군집으로 투자한 경우도 많다. 대전 유천동 주상복합 3블록(3BL) PF 사업장에는 안성장학, 고양동부, 북구, 문화, 대전온천, 진잠, 태평, 대전제일, 삼성동, 우리, 충무, 도림, 용두, 무태, 창신, 추부, 신우, 행복 등 수십 개의 새마을금고 지점이나 단위조합이 투자를 집행했다. 동대전 홈플러스 재건축 사업에는 무려 35곳의 새마을금고 지점과 단위조합이 PF 대출을 해 준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워크아웃 건설사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약정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용해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갈 계획이다. PF 대주단과 시공사, 채권금융기관 간 이견 조정장치를 마련하고 대주단 내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에 대한 의결정족수 비율을 낮췄다. 또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 경우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한 면책도 받을 수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국내 시공순위 16위의 대형 건설사 워크아웃으로 직접 채무보다 PF 사업장의 간접 채무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해관계 조율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면서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주축으로 가이드라인을 잘 따르면 워크아웃이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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