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중 갱단 쳐들어왔다…"이 나라 떠나야" 지옥이 된 낙원
남미산 마약의 미국·유럽행 관문이 된 에콰도르의 치안 상태가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마약 갱단 수괴의 탈옥으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무장 괴한들이 뉴스 생방송 중 난입하고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폭탄이 터지는 등 폭력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때 은퇴한 미국인이 몰리던 에콰도르는 국제 마약 유통 거점이 된 뒤 갱단이 활개치는 국가로 전락했다.
생방송에 무장 괴한 침입…"이 나라 떠나야"
9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에콰도르 최대 도시인 과야킬의 TC텔레비시온 방송국에 10여명의 무장 괴한이 침입했다. 두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들은 뉴스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에 뛰어들어가 방송 진행자와 스태프 등에게 총구를 겨눴다. 직원들은 겁에 질려 스튜디오 바닥에 엎드리거나 주저앉았고 이 상황은 그대로 중계됐다.
출동한 군과 경찰이 진압 작전을 펼친 끝에 1시간여 만에 관련자 13명을 체포했다. TC텔레비시온의 뉴스 책임자인 알리나 만리케는 "괴한이 내 머리에 총을 겨눠 아직도 충격이 크다"면서 "이제 이 나라를 떠나 아주 먼 곳으로 가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앞서 이날 새벽에는 쿠엥카에 있는 이반 사키셀라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수도 키토 시내에선 약탈과 폭발이 보고됐고, 에스메랄다·로하·엘구아보 등지에서는 차량 방화와 총격 사건이 있었다.
이번 사건은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이 갱단 로스 초네로스의 수괴 아돌포 마시아스의 탈옥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하루 만에 발생했다. 노보아 대통령은 군·경에 치안 강화를 지시했지만, 갱단 조직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관들을 납치하는 등 한층 대담한 행동을 벌이고 있다. 일부 교도소에선 폭동이 발생해 또 다른 갱단 두목급이 탈옥했다.
이로 인해 에콰도르 남쪽 접경국 페루도 9일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에콰도르 주재 중국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10일부터 일시 폐쇄에 들어갔다.
美 은퇴자 천국 → 마약 유통 중심지 변모
10여년 전만 해도 에콰도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된 나라로 꼽혔다.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 해변, 갈라파고스 제도 등 빼어난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산층 은퇴자들이 몰려들었던 나라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세계 마약 유통 중심지가 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에콰도르엔 대규모 마약 재배 농장, 코카인 정제 시설 등은 없다. 하지만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으로 꼽히는 콜롬비아·페루와 인접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북미와 유럽으로 향하는 마약의 밀수 통로가 됐다.
에콰도르는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국이다. 마약 갱단들은 태평양 연안의 과야킬을 오고가는 바나나 컨테이너선에 마약을 실어 유통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스페인 수출입 관리 당국은 에콰도르에서 출항한 바나나 컨테이너선에서 9.5t에 달하는 코카인을 발견했다. 에콰도르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약 210t의 마약을 압수했으며 대부분 코카인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약 유통이 늘어난 이유가 에콰도르가 미국과의 마약 퇴치 협력을 끊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앞서 지난 2009년 에콰도르 정부는 해안도시 만타의 미군 주둔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미 국무부와의 국제 마약국 협력도 종료했다. 에콰도르의 전 마약 단속관은 "미군이 철수하면서 콜롬비아 국경 통제력이 약화했고 이에 따라 마약 유통이 늘었다"고 전했다.
활개 치는 갱단…수괴는 황제 수감하다 탈옥
이 과정에서 멕시코·콜롬비아의 거대한 갱단들은 에콰도르의 국경과 항구로 마약을 옮기는데 에콰도르 갱단을 이용했다. 이를 발판 삼아 소규모 범죄조직이었던 로스 초네로스 등이 세력을 키웠고, 갱단 간의 이권 다툼이 잦아지면서 강력범죄가 급증했다.
지난 2016~2022년 에콰도르 살인 범죄율은 거의 5배로 뛰어, 인구 10만명당 살인 범죄 희생자가 25명으로 추정된다. 라틴아메리카 싱크탱크 인사이트 크라임에 따르면 과야킬에선 지난해 1~11월까지 전년 대비 살인 사건이 80% 증가했다. 마약 운반 경로에 있는 로스리오스 지역에선 153% 늘었다.
갱단과 대립하는 정치인들도 여럿 살해됐다. 지난해 8월 대선 후보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는 갱단 조직원 총에 맞아 숨졌다.
에콰도르 정부는 2021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갱단 조직원들이 경찰·검찰과 군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고 빠져나가거나, 구속 수감돼도 교도관과 결탁해 여전히 마약 거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에 탈옥한 마시아스는 지난해 9월 교도소에서 일상복을 입고 전통 모자를 쓴 채 책을 읽는 모습 등이 담긴 뮤직비디오를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해 ‘황제 수감’으로 논란이 됐다.
노보아 대통령은 마시아스의 체포를 다짐하며 "모든 에콰도르 국민이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에콰도르 교황청 가톨릭대의 데이비드 코르데로-헤레디아 법학과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번 사태는 에콰도르가 감옥과 거리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보안 기관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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