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공수처, 침몰의 시간

지호일 2024. 1. 11. 04:0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1기의 시간이 막을 내리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2021년 4월 정원에 한참 모자라는 13명의 검사에게 임명장을 준 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13명이 있다. 그 13명이 세상을 바꿨다"고 자신했지만, 13명 중 지금 공수처에 남은 이는 2명뿐이다.

현재의 공수처는 정쟁의 산물이다.

공수처는 지난 3년 내내 무능력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1기의 시간이 막을 내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침몰의 3년이었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상징이던 공수처는 출항과 동시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설계부터 심각한 결함을 안고 건조된 배에 항해 한번 한 적 없는 초짜 선장과 선원들을 태워 일단 닻부터 올리게 한 결과였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2021년 4월 정원에 한참 모자라는 13명의 검사에게 임명장을 준 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13명이 있다. 그 13명이 세상을 바꿨다”고 자신했지만, 13명 중 지금 공수처에 남은 이는 2명뿐이다. 조직 내부에서부터 희망이 없다고 보고 서둘러 탈출했다는 얘기다.

현재의 공수처는 정쟁의 산물이다.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2019년 4월부터 그해 12월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여야는 ‘동물 국회’ 소리를 들어가며 충돌했다. 당시 여당의 ‘닥치고 공수처’의 근저에는 ‘검찰을 그냥 둬선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원한과 피해 의식도 자리했다. 여의도에서 공수처 대치가 격화되던 시기는 서초동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진행하던 때였다는 점도 이를 보여준다.

공수처 설립 목표가 검찰 힘 빼기에 맞춰지다 보니 정작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해야 하는 공수처 조직을 어떻게 정비할지, 수사 능력과 중립성·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결과는 이후 전개된 양상대로다. 공수처는 지난 3년 내내 무능력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드러난 성적표도 참담하다. 공수처는 지금껏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낸 경험이 없다. 직접 기소한 사건 자체가 3건에 불과한 데 이 중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혐의’ ‘전 부산지검 검사 수사기록 위조 혐의’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손준성 검사 고발 사주’ 의혹은 우여곡절 끝에 오는 31일 1심 선고가 내려진다.

그간 공수처가 청구했던 5번의 구속영장도 모두 법원에서 퇴짜를 맞았다. ‘5전 5패’란 오명과 함께 수사 대상자들마저 아래로 보는 처지. 초대 지휘부를 수사 문외한인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처장과 판사 경력의 차장으로 구성한 탓도 크다. “수사실무를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설계해 아마추어들에게 키를 맡긴 것이죠.” 공수처에서 근무했던 한 법조인의 탄식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여야의 극심한 갈등 속에 탄생한 만큼 행보에 더욱 신중해야 했지만, 되레 정쟁의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출범 초기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수사하며 처장 관용차로 에스코트한 ‘황제 소환’ 논란은 신생 조직엔 뼈아픈 실책이었다.

대선 정국에서 야권 유력 주자였던 윤석열 후보 관련 사건에 화력을 집중한 일 역시 자살골이었다. 출범도 전에 “공수처 수사 1호 대상은 윤석열 부부”라는 말이 민주당 인사들 입에서 공공연히 나오던 차에 이런 선택적 수사는 공수처를 ‘친민주당’ 프레임에 가둬버렸다.

이는 조직의 자중지란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공수처 부장검사가 외부 기고를 통해 “정치적 편향과 인사 전횡이란 두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직격하자, 이에 격분한 지휘부가 해당 검사를 검찰에 고소하는 촌극도 빚어졌다.

오는 20일로 초대 선장인 김 처장의 임기가 끝난다. 바통을 넘겨받을 2기 처장을 뽑는 일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금이라도 공수처를 예인해 설계부터 다시 한 뒤 재출항시켜야 한다. 수사력 부족, 편향성 논란, 인력 이탈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앞으로의 공수처도 뻔하다. 국민에게 버림받은 난파선이 되거나,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닌 유령선이 되거나.

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blue5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