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세대교체는 정책 전환을 동반해야
자녀 세대는 세계관이 달라
정치권 등 사람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노동·안보에서 구태의연한
보수-진보론, 사회문제에서
관성적 해법 반복 넘어
틀 깨는 접근 해보자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막내가 60대 은퇴기에 들어서고 이들의 자녀세대인 에코 세대(1979~1992년생)까지 핵심 노동인구에 편입되며 여러 분야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재계의 세대교체는 진행 중이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태풍이 몰아칠 태세다. 인구구성 변화에 따른 인물과 역할의 교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지금의 세대교체는 사회적 변화의 변곡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고도성장과 민주화, 세계화 개혁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최전성기를 살아온 성공 경험이 있다. 이에 비해 에코 세대는 자라며 배를 곯진 않았지만, 만성적인 저성장과 양극화로 좋은 일자리와 좋은 대학을 향한 무한경쟁에 내몰렸다. 이제 선진국 시민으로 살게 됐지만, 부모 때보다 경쟁은 심해졌고 성공과 실패의 격차는 너무 커졌다. 그 때문인지 이들은 지난 20여년 출산율 저하의 가속 페달을 밟아 왔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태도만이 아니라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 삶과 노동에 관한 가치관에서 부모 세대와 크게 다르다. 10, 20대로 내려오면 이 괴리는 더욱 커진다. 한마디로 세계관이 다른 것이다.
어디서든 세대교체가 성공하려면 인물의 교체만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맞게 비전과 핵심 가치, 태도를 함께 바꿔야 한다. 이재용, 정의선 회장 등 주요 그룹의 3세 경영자들은 세계적 기업의 리더로 발돋움하고 미래 산업을 주도하며 세대교체의 성공 사례를 쓰고 있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도 사람만 바꿀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깨고 다른 차원의 접근을 선보일 때 의미가 있다. 난제들이 쌓여 있지만, 우리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미래세대라면 이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우선 저출산 문제를 사회 위기, 사회 개혁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200여개 대책에 50조원 넘게 쓰고도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은 악화일로다. 지난 4일 발표한 정부의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출산장려 인센티브만 확대했을 뿐 비금전적 제도 개선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없었다.
전통적 가족 관념에 얽매여 혼외 출산과 비혼 동거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제도적 차별을 방치하거나, 경력단절 여성이 140만명에 달하는데도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나 성평등 사회로 가는 제도 개혁은 외면하는 보수적 관성을 깨야 한다. 미래세대의 변화된 가치관과 생활 태도를 감안할 때 가족이나 결혼, 출산과 보육에 관한 법과 제도를 손질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사회 개혁 패키지가 필요한 때다. 근로시간 유연화나 외국 인력의 도입도 이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에서도 보수는 정규직 보호 규제의 혁파를, 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20년을 맞섰다. 그동안 좋은 일자리의 벽은 더 높아졌다.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할 때다. 정규직 중심의 보상체계와 경력관리 체계를 뜯어고치고 사회안전망을 꾸준히 확충하는 시장친화적 해법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임금체계도 없고 교육훈련도 없으며 고용보험도 없는 사각지대 해결에 우선 나서야 한다.
전문가 차원의 토론이 필요한 이슈겠지만 남북 관계에서도 북한 정권 붕괴론이나 평화통일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제3의 길도 탐색해보면 좋겠다. 청년들(정치권의 정의대로라면 45세까지)의 민족과 통일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다르다.
그들에게 북한은 점차 낯설고 불편한 외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헌법의 영토 조항을 고치고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 어떨까. 분단체제 극복이 꼭 통일일 필요는 없다는 학계 일각의 양국관계론을 공론의 장에 올려 갑론을박해봤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역사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진영 대결도 끝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역사이고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건국과 산업화 기반 위에 중진국 진입과 민주화가 가능했고, 민주화가 있었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다툼은 그들만의 주도권 다툼일 뿐 미래 과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대교체는 새 세상을 열기 위한 꿈과 열정, 어젠다와 로드맵이 있어야 성공한다. 사람 못지않게 가치와 솔루션의 교체가 필요한 때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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