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일과 일 사이

2024. 1. 1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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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심 사회를 산다. 일을 떠나 살 수 없다. 일과 삶은 분리할 수 없다. 노동의 역사는 오래됐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찾아온 고통은 생존을 스스로 책임지는 일이다. 일은 특성상 성과를 내야 한다. 탁월한 성과를 낼 때 그 결과를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성공은 상대적이다. 비교에 의한 평가다. 비교는 피로를 가져온다. 성공을 강조하는 사회는 피로증후군에 시달린다. 성공의 다른 쪽에는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자들이 더 많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성공을 향해 달리다 보면 쫓기게 된다. 한번 뛰기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뛰어야 하고 죽지 않기 위해 뛰어야 한다. 나중에는 왜 뛰어야 하는지 모른 채 뛴다.

어디를 가나 꿈을 성취하는 법, 빠른 시간에 최대 성과를 내는 법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많다. 성공이나 생산성을 부추기는 자기계발서는 언제나 인기가 높다. 일종의 불안을 감추게 하는 기술이다. 무능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어야 한다. 뛰는 법은 알려주는데 멈추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후유증은 뻔하다. 한때 반짝하고 끝나고 만다. 갑자기 무너지는 사람이 많다. 내몰린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

뛰는 법만 배운 사람은 멈출 줄 모른다. 날긴 했는데 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새는 추락한다. 날개를 접을 줄 모르면 날 수도 없다. 오래 웅크린 새가 높이 난다고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도 식을 때가 있다. 뜨거울수록 빨리 식는다. 일은 언젠가 싫증 나게 돼 있다. 그러므로 일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일벌레가 아니다. 일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고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멈출 줄 안다. 일과 일 사이를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일과 쉼의 균형을 가지고 있다. 들숨과 날숨의 밸런스를 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계속 달리기만 하면 어느 순간 멈추게 돼 있다. 가열된 엔진을 식혀주고 연료를 채우고 운전자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잠깐 쉬어야 한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때로는 하루의 해도 길다. 서산에 기운 해가 금방 떨어지지 않는다.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사라져 가는 동안 시인들의 가슴에는 시 구절이 쏟아진다.

정신없이 밀고 들어오는 일 속에서도 막간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묘미가 있어야 한다. 긴 호흡을 들이켜 보는 것,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것, 사물을 잠잠히 응시하는 일, 시집에서 발견한 한 줄의 시구에 멈춰 서는 것, 평범한 일상에서 짧지만 시간을 살짝 만들어 보는 것이다. 진짜 실력은 잠깐의 쉼을 누릴 줄 아는 묘미에 있다. 터득한 사람만 아는 비밀이다.

파괴적 삶이란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질주에서 온다. 머물러 있어야 할 시간에 달리면 사고가 난다. 멈춤은 퇴보가 아니다. 잠깐의 안식을 낭비로 보면 안 된다. 바쁠수록 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쫓기는 삶은 잃어버린 세월이 되고 만다. 거기에는 향기 나는 삶은 없고 하늘은 노랗고 삶은 지쳐가기만 한다. 사색의 발걸음은 느리다. 질주본능에 시달리는 곳에는 살벌한 상업적 논리만 있다. 멈추어 있을 때 생각은 익고 식었던 가슴은 다시 달아오른다.

분주하나 쫓기지 않는 삶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일과 일 사이의 공백 처리가 관건이다. 일상의 속도전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 무조건 휘두르기만 한다고 홈런을 치는 것은 아니다. 링컨은 “만약 내게 장작을 패기 위한 여덟 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날을 가는데 여섯 시간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불안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은 강요와 압박에 쫓겨 조금씩 소진돼 간다. 열심보다 잠깐 멈춤을 선택하는 일이 더 지혜롭다. 안식을 모르면 일은 고역이다. 기계적 중단이 아니라 욕구에 저항한 쉼이 중요하다. 일과 일 사이에 비밀이 크다.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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