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적대적 두 국가’ 선언한 김정은의 노림수
북한이 연초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완충구역에 포 사격으로 도발하기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2월 말에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전환’을 천명했다. 김정은은 “남한의 대결 책동으로 북남 관계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고착됐다”면서 남한을 더는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상대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남반부를 평정하려는 군대의 보조 역량으로 대남 사업 부문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그동안 수사적이나마 존재했던 대남 화해·협력 전술을 폐기하라는 지시이자, 이면 전략인 대남 무력 통일 노선을 노골화한 것이다. 김정은은 대남 노선 전환의 이유로 세 가지를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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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도발 앞서 대남 노선 전환 선언
화해·협력·통일 상대 불인정 의도
민족 벗어나 핵 위협 정당화 노려
」
첫째, 남한이 일관되게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며 한국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북한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통일 노선으로 지지를 받았으나 남한의 방해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는 논리를 폈다. 김정은은 남한의 역대 대북정책은 모두 북한 정권 붕괴를 추구했다면서 “괴뢰 정권이 10여 차례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통일 기조는 변함이 없는 점이 산 증거”라고 주장했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 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야망은 민주든, 보수든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둘째, 남한 사회의 성격을 “미국의 식민지 속국에 불과하다”면서 남한을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김정은은 “남조선은 정치는 실종되고, 사회 전반이 양키 문화로 혼탁하며,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신불수 정권”이라면서 “동족이라는 수사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족속들과 통일을 논할 수는 없다”고 했다.
셋째, 국격과 지위로 볼 때 남한이 통일 논의의 상대방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은 핵 강국이고 국제 질서를 좌우하는 전략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2021년 1월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 제압’이란 표현을 추가했다. 이는 “국방력으로 조국 통일 위업을 앞당기려는 입장”이라고 해설했다. 2022년 9월 핵 무력 정책을 법령화하면서 핵 무력은 영토 완정(完整)의 수단이라고 했다. 핵 정책과 대남 정책은 상반되게 작용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대남노선의 전환을 주장한 의도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같은 민족이라는 굴레를 벗겨 핵 공격 위협을 정당화하는 데 있다.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속하면서 당 규약 개정, 핵 무력 정책 법령 제정에 이어 이번에 대남노선 변경으로 핵 개발을 정당화하고 있다. 부수적으로 북한 내부의 대남 동경심을 불식하는 효과도 도모할 것이다.
남한 사회를 겨냥한 의도는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프레임을 걸겠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유도해 한국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꺾어 보겠다는 계산이다. 북한은 이 프레임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올 봄이나 여름쯤에 고강도 복합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의 대남 노선 전환과 핵전쟁 위협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군사 및 민·관 부문의 대비 태세를 제대로 갖추면서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려 북한의 이간 전술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문제 삼은 대북 정책에 국한해 한마디 보탠다면, 좀 더 넓고 길게 보는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구사할 것을 제언한다.
한국 정부의 정책 대상은 북한의 지도자가 전부는 아니다. 김정은뿐 아니라 권력 엘리트 계층과 일반 주민을 포함해 세 주체를 고루 상대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을 상호 배척하는 개념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 관계를 긴 안목에서 보면서 통일을 포괄하는 평화 및 안보 관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어떤 정책이든 성과를 거두려면 일관성이 중요하다. 북한 지도부가 변덕스럽게 나오더라도 그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안보를 확고히 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평화를 관리하며, 끊임없이 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을 견지해 가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기범 전 국정원 1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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