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한동안 계속될 보호무역주의

김동호 2024. 1. 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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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에디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돌아올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살짝 앞서고 있다.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의 괴팍하고 거칠고 돌발적인 행태에 열광하면서다. 이런 트럼피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2020년 개봉된 영화 ‘힐빌리의 노래’를 보면 트럼피즘의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에 펼쳐진 오하이오·켄터키는 두메산골 같은 곳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잠깐 리뷰하면 시대적 배경은 1997년부터 최근까지로 이어진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미국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많은 나라 국민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대상이다. 젖과 꿀이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인은 부족한 게 없이 사는 물질문명의 특권층으로 여겨진다. 국력을 바탕으로 오지랖 넓게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

「 미국이 먼저라는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돌아오면 한층 더 거셀 듯
한국은 초격차 기술 가져야 생존

하지만 힐빌리의 노래가 보여주는 미국 시골 사람들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미국 대도시 거주자들과의 삶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과거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궁핍하다. 주인공의 엄마는 마약 중독자다. 고교 시절 성적이 뛰어났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등록금을 댈 집안 형편이 되지 못됐다.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아이비리그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근로 장학금을 받아 어렵사리 대학에 다녔다.

미국의 빈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주인공이 졸업 무렵 취업 인터뷰를 앞두고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다. 자신을 오하이오 출신이라고 소개하자 “그곳은 레드넥이 많은 동네”라는 반응이 바로 돌아왔다. 뒷목이 새빨갛다는 뜻의 레드넥은 미국 남부를 비롯해 농촌에서 뙤약볕 아래 일하는 노동계층을 의미한다. 영화 제목 중 힐빌리도 두메산골의 시골뜨기라는 뜻이다. 힐빌리의 ‘노래’에서도 노래의 원어는 엘레지다. 구슬픈 노래라는 뜻이다. 힐빌리의 ‘비가’ 또는 ‘구슬픈 노래’가 원문에 가깝다.

트럼프는 이런 중하류 소득계층의 백인 정서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모두 뒤집어 놓는 것이 이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첫걸음이다. 산업 차원에서는 1980년대 이후 해외로 나간 미국의 제조업과 공장을 다시 미국 땅에 불러들이고, 중국으로 쏠리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해 미국 주도로 이끌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는 기치 아래 미국 우선주의다.

미국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이렇게 급변침하게 된 건 미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자유무역주의의 기치를 내세워 무역장벽을 낮추고 국경을 넘어 경쟁을 촉진했던 신자유주의는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 한국·일본 등 동맹국에 시장을 개방하게 했고 체제가 다른 중국도 2001년 자유무역 체제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거대한 오산이 있었다.

중국은 중화 민족의 중흥을 내걸고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포함해 세계 1위에 올라선다는 국가 목표를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이 발톱을 드러내자 미국은 초당적으로 정책 변화에 나섰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중국에 대한 견제 정책은 지속했다. 다만 우방국들과의 동맹 같은 미국의 전통적 자산은 유지하겠다는 것이 바이든 정부와 전임 트럼프 정부의 차이다.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은 지난 8년에 걸쳐 크게 달라졌다.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의 러스트벨트에는 다시 공장이 돌아가고, 농업지대였던 남부는 최첨단 반도체·배터리 공장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힐빌리에선 환호할 거다. 그리고 더 박차를 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게 바로 트럼프 지지의 비결이자 트럼피즘의 토양이다.

여론조사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편협하게 만드니 부끄럽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을 앞서고 있다. 괴팍한 트럼프의 행태는 반대하지만,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고 공장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정책에는 미국인 상당수가 지지를 보낸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한국엔 리스크가 되고 있다. 미국이 구축한 자유무역 체제에서 번영을 누려왔지만,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로 계속 방향을 틀면 한국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 바이든이 재선해도 미·중 경쟁 때문에 이 흐름은 달라지기 어렵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초격차 기술을 갖는 것 외엔 대안이 없고 그 열쇠는 규제 혁파밖에 없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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