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율곡 이이의 용인 철학
아홉 번 과거에 장원급제했다니 율곡(栗谷) 이이(1536~1584)는 누가 봐도 수재였다. 대부분의 수재가 그렇듯이 그의 마음에 차는 역사 인물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붓끝에 좋은 소리를 들은 사람은 세종 한 명이었을 것이다.
수재인 그가 평가한 인물에는 칭찬보다 허물이 더 컸다. 그의 눈에는 다급하게 있어야 할 일보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더 크게 보였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이 세상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없어야 할 것이 있을 경우엔 상처가 더 크다.
이를테면 써야 할 사람을 안 쓰면 그 한 사람의 기회 상실로 끝나지만, 안 써야 할 사람을 쓰면 써야 할 사람을 안 쓴 기회 상실에 더해 안 써야 할 사람의 실수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그래서 율곡이 늘 선조 임금에게 간언한 것은 ‘사람 쓰는 일(用人術)’이었다. 그가 보기에 선조는 그리 지혜로운 왕이 아니었다. 왕을 핏줄로 대물림할 것이 아니라 명군에게 선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론을 평생 가졌지만, 시대가 허락하지 않자 “저런 사람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현실이 서글펐다”고 생각했다.
율곡이 가장 걱정한 것은 관료의 부패였고, 이를 암묵적으로 외면하는 왕과 간관(諫官)의 타락이었다. ‘속류(俗流)가 조정에 충만해 조정에서 논의가 있으면 사론(邪論)이 떼 지어 지껄이니 바른 의론의 연약함이 머리털로 천 근의 짐을 끄는 것과 같았다’는 기록을 남겼다(『경연일기』 선조 9년 정월). ‘군역은 노비를 대신 보내고 관리의 녹봉은 백성의 고혈이니 소 치는 아이도 왕과 대관을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다.’(『경연일기』 선조 14년 4월)
나라가 어려울 때를 살펴보면 평생 권력 문전에서 기신거리던 인물이 아직도 그 곁에 어정거리고 있다. 정부 요직이 공천받는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다. 그래서 율곡의 말씀이 더욱 생각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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