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원 카카오벤처스 파트너 “‘길게’ 보다 ‘짧게’ 목표 달성하라”
디지털 헬스케어는 스타트업 씬에서 인공지능(AI) 다음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코로나 이후로 정보기술(IT)와 접목한 의료 서비스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년 후인 2026년, 약 826조5523억원 규모까지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에도 지난해 경기악화로 글로벌 VC 업계가 얼어붙었다. 투자 혹한기가 장기화되면서 지난해 세계 벤처캐피털(VC) 투자가 35% 가까이 급감한 것이다. 펀드 결성과 회수 모두 부진했다.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파트너를 최근 경기 성남시 카카오벤처스 본사에서 만나 현재 상황과 지난해 스타트업씬을 달궜던 ‘비대면 진료’의 향방에 대해 물었다. 김 파트너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을 것이라는 낙관도 있으나, 넘어지면 일어날 기회가 없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를 돌아봤을때 투자 업계 어땠나.
“투자가 힘들어지게 된 것은 벌써 재작년이다. 2022년 7~8월쯤부터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느꼈다. 투자업계 건 스타트업 대표건 ‘올해는 나아질 거야’라고 낙관했다. 근데 나아진 것은 없었다. 한국 VC의 구조상 성과보수보다 운용보수에서 이익이 나와야 하는 구조다. 지난해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투자가 이뤄져야 VC도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카카오벤처스 얼마나 다양한 곳에 투자했나.
“2024년 기준, 현재 10개 펀드 결성했고 현재 8개를 운용하고 있다. 규모는 3700억원 이상이다. 현재까지 투자한 곳은 240곳 이상, 누적 투자금 3200억원 이상이다. 투자 분야는 크게 서비스, 딥테크, 디지털 헬스케어 극초기 스타트업이다. 투자한 곳들 중 유니콘에 오른 스타트업은 한국의 대표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용하는 ‘두나무’와 당근마켓, 시프트업, 한국신용데이터 등이 있다.”
-김 파트너는 의사 출신이다. 왜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졌는가.
“카카오벤처스를 오기 전 요양병원 원장으로 지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항상 관심을 가졌다. 7~8년 전쯤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자문 역할도 했다. 연이 닿아 카카오벤처스에서 일을 하게 됐다.”
-수많은 VC 중 왜 카카오벤처스였는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많은 VC가 있다. 그러나 VC 중에서도 카카오벤처스는 ‘초기투자’에 집중한다.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은 사업성 검증이 끝난 단계다. 쉽게 말해 ‘각이 잡힌’ 상태다. 스타트업 투자의 가치는 스타트업이 커나가는 단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장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또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잘 알아보고 대표들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상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성과가 늦게 나타나는데, 현 상황에서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있는가.
“넘어지면 일어날 기회가 없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리드타임이 길다. 투자를 받는다고 해서 바로 성과가 나오는 서비스 분야 스타트업과는 다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냉정하게 말해 느긋하게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졌다. 대표들에게는 계속해 ‘마일스톤(특정 성과나 목표를 달성 단계)’를 멀리 보기보다, 짧게 찍고 갈 수 있게 준비하라 조언한다. 실패하는 것은 사치가 됐기 때문이다. ‘꿈을 좇는’ 대표들에게는 더 피드백을 혹독하게 하는 편이다.”
-비대면 진료 어떤 상황이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하이퍼 로컬(동네 생활권 기반 서비스)’로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한국은 의료 이용이 편리한 나라다. 개원 의사와 약국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질서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원격 진료가 필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규제를 모두 완화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의료 시스템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 예컨대 콜센터 격의 원격의료 전문의원을 만들어 전국에 있는 모든 환자를 가져가게 되면, 문전에 있는 의원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약배송도 비슷한 논리다.”
-카카오벤처스를 두드렸던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있었을 것 같은데.
“재작년 3월 즈음 투자했던 ‘메디르’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환자가 본인 반경 1~2㎞내에 있는 의원에서만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 완화 전인 ‘재진’ 위주의 진료 때문에 서비스 운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메디르는 피벗(pivot·다른 사업모델로 전환)이 불가피했다.”
-카카오는 헬스케어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시너지도 보는지.
“카카오벤처스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아니고 재무적 투자자(FI)이기 때문에 시너지를 목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헬스케어는 스타트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투자한 대표들 가운데 협업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전략적 로드맵상 아직 이르긴 하나 많은 우군을 확보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카카오는 플랫폼 기업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CVC 많아지는 추세인데 어떻게 보는지.
“카카오벤처스처럼 FI는 개인투자자(LP)들에게 펀드 성격 등 투자에 구애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CVC는 회사 차원에서 시너지 효과 하나만 보더라도 투자가 이뤄진다. 비교적 빠르게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게 장점이다. 그러므로 스타트업 생테계를 넓혀가는데 상호 보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주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해 카카오벤처스 ‘메가펀드’보다 ‘스몰펀드’가 중요하다는 메시지 있었는데.
“카카오벤처스는 스몰펀드인 300~400억원 사이로 초기 투자에 집중돼 있다. 메가펀드는 이에 비해 적게는 1000~2000억원 정도다. 회사 내부에서도 고민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잘하는 스몰펀드에 집중하기로 했다. 카카오벤처스가 스타트업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초기투자자로서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게 카카오벤처스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또 스몰펀드를 잘 운용한다고 해서 당연히 메가펀드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메가펀드를 운용하면서 다가올 성장통을 잘 이겨낼 수가 있는가라는 단계에서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도 있다.”
-2024년 스타트업 창업을 앞두거나 한 대표들에게 조언하고 싶은게 있다면.
“생각보다 스타트업에 부는 혹한기는 길어질 수 있다. 겨울이 지나가더라도 쏠림이 있을 것이다. 특정 업종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옷깃을 꽉 여며야 한다. 세분화해서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촘촘히 달성해야 투자의 문이 열릴 것이다. 고집보다는 시장에 순응하는 자세로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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