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안전 문제로 문 닫는 ‘대전 서구체련관’… 갈 곳 잃은 장애아들

전희진 2024. 1. 1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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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D등급… 4월 철거 예정
1997년 개관한 대전서구건강체련관 전경. 이곳은 개관 이후 27년간 장애인 이용자들의 쉼터 역할을 했지만 지난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안전등급 'D등급'을 받으며 철거가 결정됐다.


27년간 대전지역 장애인들의 체육시설이자 쉼터 역할을 했던 ‘대전서구건강체련관’이 4월 문을 닫는다. 지난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안전등급 ‘D등급’을 받으며 철거가 결정됐다. 대전 서구는 그 자리에 새로운 장애인 체육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장애인 이용자들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4~5년간 갈 곳을 잃게 된다.

수영 포기해야 하는 발달장애 아이들

건강체련관 1층에 마련된 장애인 전용 수영장에서 회원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 이곳을 이용하는 장애인 회원 수는 총 963명이고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300여명이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발달장애 아동 A군(9)의 어머니는 서구건강체련관 폐관 소식이 청천벽력 같았다고 토로했다. 아들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서구체련관에 보내 수영을 시킬 생각이었지만 폐관 때문에 새로운 수영장, 혹은 새로운 활동을 찾아야만 한다.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수영장은 이미 만석이어서 대기순번만 40번이 넘는다. 새 수영장을 찾는다고 해도 문제다. 새로운 강사에게 적응하는 것도, 새 수영장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상이 되기까지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A군 어머니는 “발달장애 아이들은 영법을 하나 떼는 것조차 엄청 오래 걸린다”며 “비장애인들이 많은 곳에서 수영을 하다 돌발행동을 하면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다. 수영을 여기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A군과 같은 발달장애인을 포함해 서구건강체련관을 이용하는 장애인 회원은 총 963명, 비장애인 회원은 1774명이다. 하루 이용객 600여명 가운데 절반인 300여명은 장애인 이용객이다. 서구뿐 아니라 대전 전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운동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도 할 수 있어서다. 1997년 개관한 이후 27년간 장애인들의 사랑방과도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구조 상 어쩔 수 없다”

변화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지난해 정밀안전진단평가를 실시한 결과 안전등급 D등급(미흡)을 받았다. ‘시설물의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실시 등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안전등급 D등급을 받을 경우 사용자는 시설물의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결국 대전 서구는 비장애인 사용자들에게는 지난해 12월 말까지, 장애인 이용자에게 는 오는 3월 말까지만 체련관을 이용토록 하고, 4월부터 철거수순을 밟기로 했다. 비장애인들이 이용하던 2층 수영장은 현재 배수가 완료됐고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1층 수영장만 운영 중이다.

갑작스런 폐관 결정에 이용자들은 반발했다. 매년 진행된 건물의 기능보강 사업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2015년 정밀안전진단평가에서는 B등급을 받았는데 불과 8년 만에 두 단계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신혜영 대전 서구의회 의원은 “1년에 평균 1억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기능보강 사업을 해 온 것으로 안다”며 “확인 결과 예산을 모두 기능보강에 쓰는 것이 아니었다. 정작 보강해야 할 부분은 고치지 못하니 시설이 급격히 노후화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졸속행정이란 지적에 대전 서구 역시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2022년 행정안전부로부터 특별교부금을 받아 서구건강체련관 등 2곳에 대한 내진성능평가를 진행했는데, 체련관 건물이 내진성능은 고사하고 수직하중조차 법적 기준에 미달했던 것이다.

서구는 복층으로 4개 레인 규모의 수영장을 운영하는 서구체련관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누수 등의 문제도 잦다 보니 콘크리트같은 구조물도 불과 27년만에 노후화가 됐다고 부연했다.

서구는 체련관 건물을 올해 안으로 폐쇄하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신축 건물을 착공할 계획이다. 건물이 완공되고 이용이 재개될 때까지는 4~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산확보·의견수렴 등 할일 산적

관건은 예산 확보다. 구는 공모사업 등을 신청해 체육기금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비까지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구상일 뿐 구체적인 예산 확보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건물 부지의 용도가 시청·청사 등 행정시설만이 들어설 수 있는 ‘공공업무시설 용지’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구 관계자는 “공모사업 등을 신청해 시 예산을 지원받고 필요에 따라 구 예산도 확보할 예정”이라며 “이곳이 27년간 체육시설로 사용된 부지이기에 현행화 작업을 하면 토지의 용도변경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갈 곳을 잃은 장애인 이용자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구에서 셔틀버스 등을 이용해 다른 체육시설로의 이동을 지원한다지만 대체 시설 다수는 비장애인 위주의 시설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을 위한 모자시설이 갖춰진 장애인 친화 체육시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은 무엇보다 구의 소통 부재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지난해 11, 12월 2차례 간담회가 열렸지만 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통보만 했을 뿐 이용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는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김운화 서구건강체련관 이용자 대표는 “대체시설로 선정한 수영장 중에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파도풀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장애인의 특성을 알고는 있는 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전문제로 폐쇄가 불가피하단 것은 우리도 안다. 그럼에도 구는 대안없이 계획만 공표하고 짜맞추기식 행정을 하고 있다”며 “이곳은 우리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서철모 서구청장 임기 내에 사업이 완료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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