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실패했지만…재계 ‘MBK 쇼크’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1. 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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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조원을 굴리는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지주회사) 경영권을 노린 공개매수가 실패로 끝났지만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MBK 쇼크’라는 표현이 회자됐다. 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 일대 기반을 둔 굴지 PEF가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국내 대기업 총수 경영권을 노린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최대주주의 안정적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평가받는 40% 이상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PE(Private Equity)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보다 소유 기반이 취약한 대기업 집단에서는 ‘제2, 제3의 한국앤컴퍼니’로 공격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사모펀드 투자 전략이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로 수렴하는 양상도 금융권에서는 주목한다. MBK처럼 경영권 인수 후 기업가치 개선에 주력하는 ‘바이아웃(Buyout)’ 기반 전통적인 PEF와 지배구조 개선이 목적인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무너지면서 유사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공개매수 무산

이례적인 오너 공격

최근 MBK가 조현식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과 진행한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무위로 돌아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MBK는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SS·특별상황펀드) 2호의 특수목적법인(SPC) 벤튜라로 진행한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지분 8.8%에 해당하는 838만8317주가 응모했다고 공시했다. MBK 측은 “응모 주식 수가 최소 목표 수량에 미달해 응모 주식 전부를 매수하지 않는다”며 “지배구조 개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한국앤컴퍼니 상황을)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개매수가 실패로 일단락됐지만 MBK의 이번 경영권 확보 시도를 두고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재계 안팎에서는 MBK가 애당초 한국앤컴퍼니그룹 ‘형제의 난’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선이 많았다. 최대주주 지분율 40%를 웃도는 상황에서 유통 주식 수를 감안하면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 시도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재계에서 성장 기반을 다진 PE가 총수 일가와 등을 돌리는 선택을 한 것부터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국내 대기업 집단은 지분, 사업 관계 등으로 여러 기업군과 얽히고설킨 구조다.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PEF가 대기업 계열사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거나, PEF 보유 지분을 대기업에 매각할 때도 많다.

대기업과 PE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추진한 거래는 차고 넘친다. 글랜우드PE는 CJ그룹 승계 핵심 계열사 CJ올리브영 2대 주주다. 글랜우드PE는 2023년 10월 SKC에 폴리우레탄(PU) 원료 사업을 하는 SK피유코어 지분 100%를 인수했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는 2015년 한국앤컴퍼니 자회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국내 최대 자동차 공조회사 한온시스템을 공동 인수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과 척을 진 MBK도 2016년 두산그룹 계열사 두산공작기계를 약 1조원에 사 와 2022년 2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MBK는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카드를 인수한 뒤 최근 매각을 추진 중이다. PE가 재계 오너 일가와 관계 관리에 각별한 공을 들이지 않고는 이런 일들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대기업 지주사 관계자는 “현직 오너 경영인을 정면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재무적 파트너로 MBK와 한배를 타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 중”이라고 전했다.

동북아 굴지 PEF MBK파트너스가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지분을 정면으로 겨냥해 재계에서 당혹감이 감돈다. 사진은 한국앤컴퍼니그룹 본사 외관. (한국앤컴퍼니그룹 제공)
MBK, 경영권 공격 속내는

행동주의 전략 외연 확장

그럼에도 MBK 측이 이례적으로 재계 오너 경영권 확보를 시도한 것은 몇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첫째, MBK가 펀드 출자자인 LP(Limited Partners·유한책임투자자) 다각화를 기반으로 PE업계 톱티어(Top-Tier) 지위를 확보한 만큼 더는 국내 대기업 집단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다.

MBK는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바이아웃’ 전략으로 평판을 닦은 뒤 국민연금과 공제회 등 국내 LP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LP를 유치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사모펀드 특성상 정확한 출자자 구성은 알 수 없지만 MBK 주요 LP 대다수가 캐나다연금(CPPIB),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캘퍼스), 아부다비투자청 등 해외 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지분 확보에 나선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 역시 출자자 절반 이상이 미국 일리노이주 교직원은퇴연금과 콜로라도주 공무원은퇴연금 등 해외 LP로 알려진다.

통상 PE업계에서는 해외 LP를 중심으로 펀드 출자자 다각화를 이루는 것을 선호해왔다. 여기에는 국내와 해외 LP 간 투자 속성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연기금 등 국내 LP는 펀드 조성부터 자금 회수(Exit)까지 평균 5년 안팎 기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PEF는 평균 7~8년 운용된다. PE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은 자본 시장 역사가 국내와 비교가 안 될 만큼 길어 공적자금 성격의 LP도 모험자본에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선호하는 투자처도 구분된다. 국내 LP는 상대적으로 모험자본 성격의 ‘블라인드펀드’보단 ‘프로젝트펀드’ 선호도가 높다는 게 PE업계 대체적인 시각이다. 블라인드펀드는 투자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대규모 자금 조성과 투자에 나서 모험자본 성격이 짙다. 한국앤컴퍼니를 상대로 경영권 공격을 단행한 MBK 펀드 역시 블라인드펀드다. 반면, 프로젝트펀드는 수익이 날 만한 투자 대상을 미리 정한 뒤 투자금을 모은다.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과거 MBK가 주도했던 딜라이브(옛 씨앤앰)가 워크아웃 수준의 채무 재조정을 거치면서 국내 출자자 상당수가 손실을 봤다”며 “PE 역사가 짧은 국내 금융권 정서상 개별 투자 건에서 이런 손실이 발생하면 재투자를 받기 쉽지 않다”고 돌아봤다. 이런 경험이 MBK가 LP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연기금 관계자는 “MBK 입장에서는 PE가 보유한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따지지 않고 개별 투자 건 손실을 문제 삼는 국내 금융권 관행에 답답함을 느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둘째, 경영권 지분을 노리는 바이아웃 PEF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주력하는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확보에 나선 MBK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 역시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행동주의펀드와 핵심 투자 전략이 다르지 않다.

통상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는 투자 전략 결이 전혀 달랐다. 소수 전문 투자자를 대상으로 펀드 출자자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두 유형 모두 ‘사모펀드’로 범주화할 수 있지만 투자 전략만큼은 명확히 구분됐다.

행동주의는 타깃 회사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적극적인 주주 활동으로 기업가치를 키워 차별적인 수익을 노리는 투자 전략을 뜻한다. 기업 전략을 수정하도록 요구하거나 운영의 개선, 효과적인 자산 배분, M&A 시도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압력 행사 등이 대표적인 투자 전략이다. 이런 투자 전략을 기반으로 운용되는 펀드를 행동주의펀드라고 부른다.

자본 시장 역사가 긴 해외에서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는 상호 대립을 빚을 때가 많았다. 행동주의펀드가 소수 지분을 사들인 후 이사회 진입을 시도하면 해당 기업 오너가 PE를 ‘백기사’로 불러 경영 개입을 차단하는 식이다.

최근 수년간 이런 대립 구도는 상당 부분 무너지고 지배구조 개선 등 행동주의 진영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맞부딪히게 됐다는 게 금융권 진단이다.

글로벌 금융권에서는 행동주의펀드가 경영권 지분을 통째로 인수해 기업가치 개선을 시도하거나, 바이아웃 PEF가 이른바 ‘토홀드(Toehold)’ 지분(5% 공개 보고 임계값 미만 지분)을 인수한 뒤 이사회 진입을 노리는 사례가 심심찮게 목격된다.

외신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공격으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미국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은 2020년 사모펀드 베리타스캐피탈과 함께 미국 시스템 통합 업체 큐빅코프 경영권 지분을 노렸다. 엘리엇은 2022년에는 사모펀드 비스타에쿼티파트너스와 손잡고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시트릭스를 165억달러에 인수했다. 엘리엇은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사모펀드지만 최근 수년간 바이아웃 거래에 심심찮게 이름을 올린다. 반대로, 바이아웃 PEF 선두 주자 KKR이나 TPG가 상장사 소수 지분을 매입한 뒤 이사회에 참여하고 주주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투자 전략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바이아웃 PEF고 행동주의펀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학계와 금융권에서는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의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사모펀드업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이어가면서 시장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바닥났다. 이에 투자금 모집(Fundraising)에 차질을 빚은 글로벌 PE가 기존 바이아웃펀드로는 활로를 모색하기 힘들자 행동주의 전선에 뛰어들어 전략 다각화와 외연 확장을 노렸다는 진단이다.

둘째, 사모펀드 주요 출자자인 해외 LP 사이에서 ESG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해외 연기금과 국부펀드는 대부분 ESG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해 투자 결정부터 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에 도입했다. 투자 전략 ‘변방’ 취급을 받던 ESG가 이제 투자 성과를 위한 필수 전략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국제 기관 투자자 협의회인 ILPA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한 LP의 93%가 투자처에 부정적인 ESG 이슈가 있을 경우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MBK 역시 해외 중심 출자자 다양화를 지렛대 삼아 행동주의로 외연 확장에 나섰고 첫 타깃으로 한국앤컴퍼니가 물망에 올랐다는 진단이다. 이런 맥락에 비춰, 공개매수에 실패했지만 MBK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손해 본 것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애당초 최소 물량에 미달하면 주식을 사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공개매수에 성공해 경영권을 가져왔다면 원매자(매수자) 등장 시 조 고문과 조희원 씨 지분을 함께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 조항도 확보했던 터다.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사장은 “MBK는 이번 공개매수 추진으로 PEF 영역 확장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확보한 것”이라며 “오너 일가 간 경영권 분쟁 불씨가 살아 있는 대기업 집단에서는 MBK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당혹스러운 재계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속도

올 3월 주총을 앞둔 국내 재계에서도 당혹감이 감돈다. 특히 대다수 국내 대기업은 3, 4세 오너 경영인으로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선대에 비해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50%가 넘는 상속세를 감안할 때 이들이 선대 경영인과 대등한 수준의 소유 기반 지배력을 승계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3, 4세 오너 경영인의 지배력 확대 발판이 될 주요 지주사 지분율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친다. HD현대만 봐도 소유 구조 측면에서는 정기선 부회장 지배력이 취약하다. 2023년 3분기 그의 HD현대 지분율은 5.3%에 불과하다.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지분 약 26.6%(1조2774억원)를 넘겨받으려면 대주주 경영권 주식에 적용하는 60% 상속·증여세율을 적용한 7000억~8000억원 규모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단순 배당 등으로 선대 경영인에 버금가는 수준의 지배력을 유지할 승계 재원 마련이 결코 쉽지 않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 지주사 한화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최성환 사장은 SK네트웍스 지분율이 3.1% 수준이다. 김건호 사장은 삼양홀딩스 지분율이 2.9%에 그친다.

결국 취약한 소유 구조 아래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경영 성적을 스스로 입증하고 ESG 등 지배구조 개선에 실질적인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게 이번 사태가 재계에 던진 메시지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창업자 가문 일원이라는 상징성을 등에 업었더라도 향후 경영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 전략적·재무적 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승계 정당성을 집중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주주 가치 제고에 힘쓰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다. 한국타이어는 2023년 사상 최대 실적이 예고됐지만, 이번 사태 직전까지 주가는 답보 상태였다. 재계에서는 한국앤컴퍼니를 향한 MBK의 추가 공세가 이어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한편 재계는 지배구조 선진화에 속도를 내는 한편,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MBK 사태를 계기로 오너 일가 경영권 지분을 노린 적대적 M&A 시도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재계 우려다.

대표적인 방어 장치로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로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일본 등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에게 주당 10배 안팎의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두고 있다. 포이즌필은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가 발생할 때 기존 주주에게만 저가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한다. G7 주요국 중 한국만 도입하지 않았다. 장근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경제·사회적 배경에서 기업 법제가 구축돼왔기에 특정 국가의 법제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신주인수선택권은 비교 대상 국가 중 우리나라만 미도입 상태인 만큼,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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