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억 서경대 혁신부총장, 저서 ‘새로운 중국교육사’ 출간

2024. 1. 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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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혁신부총장인 구자억 교수가 최근 저서 ‘새로운 중국교육사’를 펴냈다.

신정에서 출판된 이 책은 중국교육 발전의 역사를 중국역사의 연대기에 따라 고찰한 책이다. 사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또 삼국지 등 중국역사를 다룬 책들을 읽음으로써 중국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해 온 중국역사를 기원전부터 생각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된다. 우선 중국이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선진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청말에 이르러 글로벌 사회발전 상황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결과 약 100년간 잠자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게 된다. 유구한 중국의 역사 속에서 교육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을 통해 당시의 정치, 사회의 모습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특징은 중국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중국교육의 발전과정을 중국정치 및 사회체제와의 관련 속에서 분석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교육은 탄생 초기부터 귀족 자제 중심으로 문호가 열려 있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서민에게 까지 문호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교육은 전적으로 통치계급의 통치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활용한 측면이 강했다. 또 정치적 측면에서도 교육은 통치세력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활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중국은 통치체제를 유지하는데 교육이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자료와 관점을 통해 이런 사실을 분석,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18개 장으로 나눠 중국교육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룬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시사회와 하, 상, 서주시대는 노예사회로서 중국교육의 발아기에 해당한다. 당연히 이 시기의 교육은 초기단계 교육의 모습을 띠고 있다. 둘째, 춘추전국 시기는 백가쟁명의 시기이자 한편으론 사학이 융성한 시기였다. 중국사회가 노예사회에서 봉건사회로 변모했으며, 교육도 큰 변혁을 맞이했다. 셋째, 진한 때에는 중국통일 속에서 봉건교육이 제도화된 시기이다. 진시기에는 분서굉유로 사상의 속박이 있었고, 한 시기에 들어와 유학으로 사상을 통일하면서 유학이 중국봉건교육의 중심이 된 시기이다. 넷째, 위진남북조 시기의 교육은 관학의 흥과 폐가 반복되고, 전문교육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다섯째, 수당 시기는 중국발전역사에서 보면 전성기에 해당한다. 당연히 사상적 다양성과 함께 봉건교육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때였다. 여섯째, 송대는 5대 10국의 할거시대의 “무”를 중시하던 것을 “문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바꾼 시기이다. 과거를 중시하고, 사인(士人)을 중용했으며, 흥학운동과 학교의 설립이 이루어졌다. 또 유불도를 모두 중시하였다. 일곱째, 요, 금, 원 시기는 “한화(漢化)”정책과 민족교육을 동시에 추진한 듀얼 교육시스템 시기였다. 여덟째, 명 시기의 교육은 과거를 중시하여 학교가 과거에 종속된 시기였다. 명 시기는 정주이학과 심학이 사상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고, 교육내용도 이에 예속되어 있었다. 아홉째, 여진족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립하였고, 20년 후 국호를 청으로 바꾸었다.

청대 교육은 만주족(원래는 여진족)이 세운 국가답게 요, 금, 원 시기와 마찬가지로, 기존 명 시기 교육을 이어받되, 만주족의 인재를 양성하는 듀얼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청 시기 교육은 봉건교육과 동시에 근대교육이 발아한 시대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열 번째, 1840년의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교육은 점점 반식민지, 반봉건 교육으로 바뀌었다. 중국이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던 시기였다. 이에 맞추어 국가자강을 도모하려는 사조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양무교육, 유신교육 사조이다. 열한 번째, 신해혁명에서 중화민국까지의 시기는 중국사회와 중국교육이 근대화로 첫발을 내디딘 시기이다. 또 봉건군주전제제도와 봉건교육제도가 막을 내린 시기이기도 하다. 열두 번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중국에 공산정권이 도입된 시기이다. 교육도 이에 맞춰 공산주의, 사회주의 인재양성으로 변화를 도모한 시기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도입, 중국식 사회주의 도입 등을 통해 중국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다. 다만, 중국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중국교육은 여전히 통치계급의 권력유지의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자억 교수는 “중국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중국이 어떤 형태로 생존해 왔고, 어떤 역사적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특히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국교육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중국의 흥망성쇠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에 대한 심층적 이해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특히 중국교육이 역사적으로 집권세력의 이념에 부합하는 역할을 해왔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점은 우리가 새겨둘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자억 교수는 베이징사범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서경대 혁신부총장, 한국대학컨설팅협회장, 한국창업교육학회장으로 있다. 극동대 혁신부총장 및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또, 경기도 민선교육감 인수위원회 재정분과위원장,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대학설립심사위원 등 중앙이나 시도교육청 등에서 다양한 자문활동을 해왔다. 구자억 교수는 (사)한중교육교류협회장 등을 맡아 한중교육 교류를 통한 한중 우호협력을 추진해 왔으며 대학컨설팅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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