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 표지판, 시뮬레이션 왜 안 했나... 남산터널 버스차로 도입해야"
[김성욱 기자]
▲ 지난 8일 저녁 퇴근길 서울 중구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 모습. 서울시가 지난달 27일부터 4일까지 이곳에 노선별 정차 구역을 새로 지정하면서 20여 광역 버스 노선이 밀려 일대 혼란을 빚었다. 퇴근길 버스 대란에 서울시가 지난 5일부터 운영을 유예하고 일단 원상복귀하면서 혼란은 줄었지만, 8일에도 승객 대기줄과 교통정체는 계속됐다. 이에 경찰 수십명과 계도 요원이 투입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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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버스 대란을 겪고도 서울시는 '경기도에서 유입되는 광역버스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한다. 난센스다. 서울에 있는 직장을 바꿀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서울시 말처럼 정말 광역버스가 많아 문제라면,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승객들 보고 '승용차 타고 다니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 그럼 어떻게 되겠나. 결국 또 서울 교통체증만 더 심해진다. 악순환이다." -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최근 서울시의 '줄서기 표지판' 설치로 명동 일대에 퇴근길 버스 대란이 불거진 가운데, 남산1호터널 같은 상습 정체구간에 버스전용차로를 신설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출퇴근 교통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에 서울시가 부랴부랴 광역버스 노선·정류소 분산 대안을 내놨지만, 서울 인구는 줄고 경기도 인구는 늘어 경기도↔서울 통근자(125만 명, 2020년 통계청 자료)가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 역시 단기 미봉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 지난 8일 저녁 퇴근길 서울 중구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 주변 모습. 서울 도심과 경기도 성남·용인·수원 등을 잇는 광역버스들이 줄 지어 서있다. 광역버스 행렬은 명동에서 숭례문 인근까지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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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적어도 사대문 안 서울 도심에서만이라도 승용차를 줄이고 버스 중심의 교통체계를 강화해야 퇴근길 정체를 풀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오후 6~8시 사이 집중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명동입구·남산1호터널 등에 현재 버스전용차로가 끊겨있는데, 이를 새로 연결해 도심 내 버스 순환 흐름을 완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9일 통화에서 "명동 일대 광역버스 노선은 주로 ▲남산1호터널-종각-광화문-숭례문-남산1호터널로 도심을 크게 도는 것과 ▲남산1호터널-명동성당-시청-남산1호터널로 도심을 좁게 도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병목 지점인 남산터널, 명동입구, 숭례문에는 정작 버스전용차로가 끊겨있어 버스도 일반 승용차와 똑같이 막힌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우려가 있었던 게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였다. 처음엔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가장 성공적인 버스 정책 중 하나로 평가된다. '승용차는 꽉 막히는데 버스는 쌩쌩 달리더라'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해당 구간 버스 이용률이 높아지고, 안착되면 승용차 사용이 정말 필요한 시민들까지 더 빠르게 일을 볼 수 있게 된다.
버스전용차로뿐만 아니라 버스에 우선 신호를 주는 제도 등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렇게 한양도성 안에서만이라도 버스 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자는 얘기는 이미 오랫동안 제기됐다. 이번 명동 대란은 여기에 손 놓고 있었던 데 대한 후과인 측면도 있다."
-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도 "야근과 회식이 일상화돼 있던 과거에는 퇴근 시간대가 자동 분산되는 면이 있었지만, 최근 주 52시간제가 정착된 이후에는 퇴근 시간이 오후 6시 전후 한두 시간 내로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라며 "시대 변화에 맞는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을 고민할 때"라고 했다.
강 교수는 "경기도 인구(1360만)가 서울 인구(940만)를 초월하는 등 광역 통근 문제는 수도권 시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고도 했다. 지난해 발표된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하루 평균 광역 출퇴근 시간은 120분에 달한다.
▲ 서울시가 남산 1·3호 터널과 연결도로 혼잡통행료를 이달 15일부터 도심 방향으로만 2천 원 받기로 했다고 밝힌 4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 1호 터널 요금소를 차량이 지나고 있다. 남산 혼잡통행료는 1996년 11월 11일부터 27년간 양방향 모두 2천 원을 징수해 온 바 있다. |
ⓒ 연합뉴스 |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오는 15일부터 남산1·3호터널의 강남 방향 혼잡통행료 2000원을 27년 만에 폐지하기로 한 것 역시 서울 도심 안까지 차를 끌고 오려는 이용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도심 공영주차장 월정기권 요금을 30% 감면키로 한 데 이어 승용차 이용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우 교수는 "(영국) 런던에서도 혼잡통행료를 15파운드(약 2만 5100원)씩 거둬 교통체증 완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라며 "남산터널 통행료 2000원은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기에 금액이 너무 싸서 문제였는데, 오히려 이마저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서울 도심 내 승용차 이용을 장려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정훈 교수도 "세계적으로도 서울 정도 규모의 대도심은 주차요금이 굉장히 높고 일본 도쿄만 해도 10분당 4000~5000원 선"이라며 "서울은 10분당 주차요금이 800~1400원밖에 안 된다"고 짚었다.
유 교수는 "올해 2024년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04년 서울 버스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한 지 2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라며 "최근 서울시의 혼잡통행료·주차요금 감면 결정은 유권자들의 즉각적인 호응을 받을 수는 있지만, 명동 버스 대란이 시사하는 것처럼 버스 중심의 도로체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역행한다"고 했다.
업계·전문가 "줄서기 표지판, 사전 논의 없었다"… 서울시 싱크탱크도 "몰랐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1월 말까지 보완하겠다고 한 명동 광역버스 정류장 운영방침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시뮬레이션도 주문했다.
통상 교통정책에 변경을 가할 때는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부작용을 예측하는데, 이번 '명동 버스대란'을 낳은 '줄서기 표지판' 건의 경우 이런 과정조차 없었던 점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서울시 산하 싱크탱크로 교통 연구도 맡아온 서울연구원조차 사전에 서울시로부터 어떤 문의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버스 정책 전문가인 윤혁렬 서울연구원 부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교통정책은 예민해 교차로 신호를 하나 변경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거치게 된다"라며 "명동 정류장 사태는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미리 묻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윤 부원장은 "(명동 정류장 운영지침 변경) 정책 시행 전 서울시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가 없다"라며 "만약 서울시가 연구원에 문의했다면 '큐(queue, 대기행렬)가 많이 발생해서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어렵지 않게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동에서 경기도 성남을 오가는 한 광역버스 회사 관계자 역시 "서울시로부터 정류소 운영 지침이 바뀐다는 소리를 전혀 못 들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광역버스 차량의 길이가 12미터인데 서울시가 정류소 정차위치 말뚝을 1미터마다 박아놨으니, 앞차가 한 대만 있어도 나머지 차들은 도착해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정체가 길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선 전체가 2시간 이상 지체됐고 다음 회차 순번이 될 때까지 차가 돌아오지 않아 운행을 나가지 못한 차량까지 있었다"고 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통화에서 "시뮬레이션 부분은 저희가 부족했다"라며 "부족했던 점들은 보완할 수 있도록 향후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퇴근길 정체를 풀기 위해 버스뿐만 아니라 승용차 제한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에 어떻게 생각하나'란 질문에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 지난 8일 저녁 퇴근길 서울 중구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 모습. 서울시가 지난달 27일부터 4일까지 이곳에 노선별 정차 구역을 새로 지정하면서 20여개 광역 버스 노선이 밀려 일대 혼란을 빚었다. 퇴근길 버스 대란에 서울시가 지난 5일부터 운영을 유예하고 일단 원상복귀하면서 혼란은 줄었지만, 8일에도 승객 대기줄과 교통정체는 계속됐다. 이에 경찰 수십명과 계도 요원이 투입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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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제가 된 중구 명동입구 정류장은 서울 도심과 경기도 수원·성남·용인 등을 잇는 광역버스 29개 노선이 몰려있는 곳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이곳에 노선별 정차 구역을 새로 지정했다가 명동은 물론 숭례문, 서울역까지 광역버스 수십 대가 도로상에 줄지어 대기하는 일이 벌어져 퇴근 시간에 15분 정도 걸리던 을지로~서울역 구간이 1시간 이상 소요되는 등 대혼란을 빚었다.
기존에는 명동 정류소 승객들이 바닥의 표시를 보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여러 대의 버스들이 동시에 정류장에 도착하면 승차 지점으로 이동해 탑승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전체 길이 35m의 정류장에 불과 1m 간격으로 10여 개의 팻말을 세우고 승객 대기·광역버스 정차 위치를 일일이 지정하면서 버스가 한 대씩만 승객들을 태울 수 있게 돼 버스 행렬이 길어졌다.
결국 시행 9일 만인 지난 5일 서울시는 명동입구역 광역버스 정류장의 노선별 지정 정차 구역 운영을 중단하고 오는 1월 말까지 시행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근본적인 정체 원인은 서울 도심에 지나치게 많은 광역버스 노선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며 명동 정류장을 거치는 일부 노선과 정차 위치를 분산하겠다고 한 상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일 "많은 분들께 불편을 드렸다"라며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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