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기운 없어 보이던 '싱어게인3' 홍이삭, 그의 팬이 됐다
[최지혜 기자]
다시 나를 부른다는 콘셉트의 JTBC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은 기성 가수들이 이름을 감추고 치르는 오디션이다. 무명이거나, 얼굴 없는 가수,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이 다시 한번 기회를 찾아 문을 두드린다. 2020년 시즌1을 시작으로 현재는 시즌3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미 가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어느 정도 지친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다. 그래서일까? 심사위원들의 평가에도 따듯함이 묻어난다. 비난과 독설이 난무했던 여느 경연프로그램과는 달리, 심사위원들은 잔뜩 움츠린 참가들을 다독이며 애정 어린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를 '상한 우유' 같다고 말하는 마음이란
그중에서도 유난히 힘이 빠진 듯한 참가자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유통기한을 알고 싶다고 한 58호 가수 홍이삭이다. 그는 2019년에 슈퍼밴드에서 4위를 한 경력이 있고 그전에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특별상과 동상을 받았다. 독립영화에서 주연과 음악감독을 맡고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어로 활약하기도 했다. 물론 꾸준히 앨범을 내며 여러 페스티벌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애매한 위치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지만, 아무리 좋은 음악을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서 오는 답답함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지만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는 유통기한을 무한대로 늘려보고자 싱어게인 3에 참가했다.
"처음 그런 걸 느껴봤어요. '나'로서도 괜찮은 거구나. 저의 물음표에 대한 느낌표를 주신 감사함이 큰 거 같아요. 그 욕심에라도 끝까지 버텨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래야 제가 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심사위원들은 홍이삭의 노래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스스로를 향해 노래하는 것 같고, 매 무대마다 정성을 다한다고.
▲ 지난 4일 ‘싱어게인3’ 세미파이널에서 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를 부른 홍이삭(JTBC ‘싱어게인3’ 화면 캡처) |
ⓒ JTBC |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선보인 <옛 친구에게>가 특히 그랬다. "나는 좋은 친구일까" 고민하며 이곡을 선택했다는 그는 가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의 만남을 꼽았다.
"나는 하루하루가 되게 생존과 그런 것들이 너무 있고... 그런데 그게 말이 안 나오잖아요. 칭얼거리는 상황이 너무 더 싫고...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안함도 많고. 나라는 사람이 지금 이 정도밖에 못 되는 것에 대한 미안함. 잘 못 챙겨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
그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여전히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밀어냈지만 먼저 연락을 해와 뭘 도와줄지 묻는 친구들. 그는 싱어게인3을 하면서 주변에 나를 응원해 주고 내 상황에 이입해주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런 홍이삭의 마음이 대중에게 닿은 걸까. 그의 노래를 찾아 듣는 이가 점점 늘어났다. 매 라운드 호평을 받은 그는 이제 마지막 파이널 무대만을 앞두고 있다.
이 청년,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나는 58호 홍이삭 덕분에 사춘기 이후 오랜만에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 난생처음 온라인 투표라는 걸 해봤다. 사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이후에는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왔다. 친구들이 뒤늦게 아이돌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쟤는 나이 먹고 왜 저러나'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 내가 뒤늦게 '덕질'이라는 걸 하게 되다니. 여러 채널에서 그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볼 게 많은 거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끝없이 그의 영상들을 보내왔다.
▲ 홍이삭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음악감독을 맡았던 영화 <다시 만난 날들> 스틸컷 |
ⓒ ㈜영화사 오원 |
홍이삭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휴학을 하며 인턴 생활을 하지만 취업을 못해 졸업이 미뤄지는 대학생들, 10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지만 번번이 서탈(서류탈락)에 무너지는 취준생들, 하루종일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합격의 이름만 바라보는 공시생들, 아예 구직을 단념한 취포자들.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이들은 어떤가. 언제 다시 세상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회사 사정으로 입사가 취소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인생의 여러 관문 앞에서 패배자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은 점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된다. '꿈을 좇는다'는 건 사치가 된 지 오래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결혼은커녕 연애할 힘조차 없는 구겨진 마음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삶을 이어가는 무수한 58호 가수가 우리 옆에 있다.
어디 청년들뿐이랴. 나 역시 몇 년째 이런저런 글들을 쓰며 공모전에 도전 중이지만 번번이 쓴맛을 보고 있다. 그때마다 "난 될 거야. 될 때까지 쓸 테니까"라고 쿨하게 넘기지만 이러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건 쓰는 게 좋아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존재를 확인한다.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쉽지 않아
원한대로 흘러가는 얘긴 없는가 봐
오늘도 방에 앉아 나를 읊어 본다
(중략)
흘러가는 시간 돌이켜 보면 너를 위한 의미가 되고
헤매는 수많은 별들이 제 위치를 찾듯이
잊혀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홍이삭의 자작곡 <별 같아서> 중에서-
밤이 더 어두울수록 별은 빛난다. 우리가 어둡고 힘든 시간을 지날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일 수 있고, 빛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는 희망을 그는 노래한다.
이렇게 홍이삭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공감을 전한다. 나는 그에게 빚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가 힘겹게 걸어온 길을 그저 즐기고 누리는 것만 같아서다. 그리고 고마웠다. 꿈을 따라 버티고 버텨 여기까지 와 주어서.
누군가의 노래가, 마음이, 삶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 것. 받은 마음을 보답하고 싶어 응원하는 것. 생면 부지의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그 모든 과정은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삭막한 세상에서 음악과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이란 건 바로 이런 걸 테다.
이쯤 되니 나에게 '싱어게인'은 더 이상 가수들이 유명가수가 되고자 경쟁하는 오디션이 아니다. 자신을 '상한 우유'같다고 이야기했던 참가자가 경연에서 힘을 얻고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끝이 반드시 해피엔딩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불어 지금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모든 58호들의 이야기도 그러하기를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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