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약속 지킨 짱구쌤과 제자들’…“지금을 열심히 살다 보면”
교장된 이장규 교사 “꿈 이룬 것 같다”
“나는 교사로서 꿈을 이룬 것 같습니다.”
20년 전 초등학교 학급 문집에 남긴 ‘약속’을 지킨 스승과 제자들의 재회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고향을 떠나 전국에 흩어져 살던 제자들은 20년 만에 옛 은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 1일 전남 영암군 모교로 모였다.
지난 7일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20년 전 약속…다들 기억할까??’라는 제목의 8분 36초짜리 영상이 화제가 됐다. 20년 전 담임 교사가 ‘학급 문집’에 작게 남긴 “20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문구가 현실이 돼 선생님과 제자들이 재회하는 장면이 담겼다.
영상 속에서 제자들을 마주한 이장규(55) 용방초등학교 교장은 “가만히 있어봐”라는 말을 연신 뱉어냈다. 이씨는 성인이 된 제자들의 얼굴에서 과거의 앳된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아이들은 현재 33세 청년이 돼 각자의 삶을 얼굴에 새기고 있다.
이씨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클까. 교사라면 누구나 갖는 궁금증이다. 아이들과의 재회도 교사라면 누구나 갖는 꿈일 것”이라면서 “나는 꿈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1992년 전라도에서 교직을 시작한 이후로 모든 제자에게 ‘친근한 짱구쌤’으로 통했다. 아이들이 그의 볼록한 뒤통수와 이름 ‘장규’를 차용해 “짱구쌤”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이씨는 “제자들이 나를 친근하게 대할 수 있어야 내게 배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또 내가 하는 조언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제자 임은지(33)씨도 “그 시절에도 체육 시간에 남녀 구분없이 뛰어놀게 할만큼 깨어있던 선생님이었다”면서 “사비를 들여 시골에 사는 저희를 기차·배 여행을 시켜주실만큼 살갑고 친숙했다”고 은사를 기억했다.
전남 영암초 6학년 2반의 재회는 20년 전부터 기획됐다. 2005년 1월 8일 당시 담임이던 이씨는 학급 문집에 “2024년 1월 1일 오후 1시, 영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말을 남겼다. 그는 교사가 된 해부터 학급 문집 ‘어깨동무’를 발간했다. 매달 10쪽 남짓한 학급 소식지를 적었고, 1년을 채우면 이를 문집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이렇게 발간한 어깨동무는 총 26호에 이른다.
그는 20년이 지나서도 제자들과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친근한 관계 맺기”를 짚었다. 이씨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은 대하는 방식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부모-자식, 스승-제자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만회할 기회가 생기고, 좋아질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재회한 제자들은 현재 대부분 영암을 떠나 현재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부산 등 각지로 흩어져 살고 있다. 고향에 살고 있는 제자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 이씨는 “당시에는 ‘우리 고장을 빛내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상경해서 성공하라고 가르치는 게 당연했다”며 “그때 내가 조금 더 우리 지역에서 살아보자고 가르쳤다면 지금 더 남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현재 전남 영암은 지방소멸위험지수 상 ‘위험진입 지역’으로 분류된다.
지방 소멸의 여파로 더는 이씨가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다. 그는 학급문집에 남긴 또 다른 약속을 지키기 위해 3~4년 전쯤 1999년도에 폐교한 영암 서호북초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오래 전 문을 닫은 학교 터로 찾아온 제자들은 없었다.
그는 “20년 만의 재회라는 게 현실적으로 쉽진 않다”며 “돌이켜보면 30대가 된 아이들은 지금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시기”라고 말했다.
이씨의 또 다른 약속은 2027년 1월 1일에도 잡혀있다. 이번엔 2007년을 함께 보낸 영암초 6학년 3반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씨는 3년 뒤 재회가 약속된 제자들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20년 뒤에 만나자고 했으니까, 보고 싶다고 당장 만나진 말자. 그때까지 열심히 살다 보면 으레 만나게 된다. 언제나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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