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도 되고 효과도 더 좋은데…혈우병약 '헴리브라' 왜 못 쓸까?

장봄이 기자 2024. 1. 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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헴리브라 치료제/사진=JW중외제약
이미 7년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혈우병 혁신 신약이 있다. 매출 1조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에도 오른 ‘헴리브라(성분명 에미시주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혈우병 환자들이 헴리브라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혈우병 치료 가이드라인에 관여하는 한국혈우재단에서 헴리브라를 ‘처방약물 목록’에 올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재되지 않으면 혈우병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재단 산하의 병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한국혈우재단이 국내 제약사인 GC녹십자와의 관계 때문에 신약 등재를 미뤄 환자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이 국내에 들여온 '헴리브라'가 일부 병의원에서 사용되는데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헴리브라는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의 자회사 주가이 제약이 개발했으며, 국내 개발 및 판권은 JW중외제약이 가지고 있다. 2019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 5월 환자들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추가되면서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특히 국내에선 지난해 상반기 급여 적용이 확대되면서 환자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기존 제8인자 제제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항체 보유 중증 A형 혈우병 환자에게만 적용되던 헴리브라 건강보험 급여가 만 1세 이상의 비항체 중증 A형 혈우병 환자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영유아 환자들도 급여 적용을 받게 됐다. 급여 확대는 혈우병 환우회 등 환자들의 간절한 국민 청원을 포함해 지속적인 요구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처방을 받기 어려운 환자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주 2~3회 혈관 주사 VS 주 1회 4주 간격 피하 주사…헴리브라 편의성↑
헴리브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1조원대 이상의 블록버스터 치료제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혈우병 표준 치료제로 사용된다. 헴리브라는 혈우병 환자의 몸속에 부족한 혈액응고 제8인자의 작용기전을 모방해 제9인자, 제10인자와 동시 결합하는 이중특이항체 혁신 신약이라고 할 수 있다.

혈우병은 혈액 내에 응고인자 중 하나가 없거나 그 양이 적어서 나타나는 질병이다. 상처가 날 경우에 혈전을 잘 형성하지 못해 출혈이 더 오래가는 증상이 나타난다. 보통 유아기나 아동기에 멍이 많이 들거나 코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게 된다. 혈액 응고인자 중에서도 제8인자가 부족하면 A형 혈우병, 제9인자가 부족하면 B형 혈우병, 제11인자가 부족하면 C형 혈우병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체 환자의 80% 정도는 A형 혈우병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헴리브라는 수요가 높은 A형 혈우병 치료제에 속한다. 

현재 국내에 유통 중인 A형 혈우병 치료제는 GC녹십자의 ‘애드베이트’, ‘그린모노’ 등이 있다. 이 치료제들은 전체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헴리브라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편의성 때문이다. 헴리브라는 피하(피부 아래) 주사 방식으로 주 1회부터 최대 4주 간격으로 투여해도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존 치료제는 모두 주 2~3회 정맥(혈관) 주사를 위해 병의원에 방문해야 했다. 환자들의 삶의 질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급여 허가 이후, 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에드베이트, 그린모노를 보유한 GC녹십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8월 GC녹십자가 미국출혈장애학회 자료를 인용해 헴리브라의 혈전 이상 사례보고율이 8인자제제 대비 2.83배 높게 나타났다고 발표한 것. 헴리브라를 투여한 후 발생한 이상 사례 2383건 중에 혈전 이상 사례는 전체 97건으로 이상 사례의 4%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반해 기존 8인자제제는 1.44%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8인자제제 치료제로는 에드베이트, 그린모노 등이 있다.

당시 한국혈우재단 유기영 원장은 "미국 실사용데이터를 이용해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한 최초의 연구"라면서 "다양한 혈우병 신약 출시는 반가운 일이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실제 의료현장에서 혈우병 신약의 안전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C녹십자 관계사 한국혈우재단, 헴리브라 처방약물 등재 미뤄
혈우병 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혈우재단 산하 의원을 이용하고 있다. 혈우재단에서 과거부터 혈우병 환자들을 관리해왔고, 오랜기간 전국 각 지역의 혈우재단 의원을 주로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혈우재단은 처방약물 목록에 헴리브라를 등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효과가 좋은 치료제의 등재를 미루는 혈우재단의 의문스러운 행보에 GC녹십자와의 관계까지 언급되고 있다. CG녹십자는 기존 혈우병 치료제의 높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사고, 혈우재단의 관계사이기 때문. 두 기관의 이해관계로 인해 의혹은 오히려 더 불거지는 모양새다.

GC녹십자에서 이례적으로 특정 치료제를 저격한 데다, 관련 재단에서도 신약에 부정적인 모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혈우병 치료 환자는 2000여명 정도이며, 대부분 환우의 치료와 관리는 한국혈우재단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그만큼 재단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혈우재단은 GC녹십자 산하의 관계사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혈우재단 관련 병의원에서는 헴리브라를 처방받을 수 없어서다. 혈우병 환자들은 급여 통과를 요구할 당시에도 헴리브라의 효과성과 편리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한 환우 가족은 "신약을 안 맞았으면 모르겠지만 맞아보니 정말 효과가 좋은 약"이라면서 "무엇보다 신약은 대체약물이 아니고 선택해서 맞을 수 있는 치료제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혈우병 환우협회인 한국코헴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혈우병을 치료하는 병원 70여곳 중에 헴리브라를 상시 비치하는 병의원은 27곳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 35% 정도의 병의원만 헴리브라를 공급하는 셈이다. 혈우재단 서울의원, 광주의원, 부산의원 등에서는 모두 헴리브라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한국코헴회 관계자는 “혈우재단이 오랜 역사가 있는 데다 대부분의 환자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 환자들이 혈우재단 의원을 이용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당연히 환자들이 필요한 상황에선 적절한 의약품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혈우재단 관계자는 "처방목록 등재는 재단 내에 의약품심의위원회를 거쳐 전문가 심사 후에 결정하는 부분이어서 현재 헴리브라에 대해서는 심사가 진행 중이다. 회의는 비정기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등재 여부나 시점 등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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