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 시장 분위기가 영…”

강창욱 2024. 1.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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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촬영한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안전진단 완화를 골자로 한 정부의 정비사업 패스트트랙 도입이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물음표를 찍었다. 초기 단계 재건축 추진을 촉진하고 장기적으로는 건설업계에 먹을거리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 사업화까지 끌고 가기에는 난관과 고민거리가 많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10일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 부담이 사업시행인가 시점으로 넘어가면서 추진위원회 설립 등 재건축 초기 사업 추진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재건축 진입 문턱 완화로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을 선호하는 현상이 높아질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기존에는 준공 30년을 넘겨 재건축 대상이 되더라도 안전진단에서 ‘아직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은 탓에 아쉬운 대로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아파트가 많았다.

정비사업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서 올해로 입주한 지 30년을 초과한 아파트는 102만2948가구다. 수도권 내 30가구 이상 단지의 18.5%에 해당하는 규모다. 함 랩장은 “안전진단과 추진위 설립, 조합 신청 및 설립 단계 규제가 과감히 완화되면 이들 단지의 재건축 정비사업 속도가 3년 이상 단축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재건축 스타트’를 끊은 다음이다. 비슷한 시기 여러 지역에서 재건축 사업이 한꺼번에 진행되면 후반기에 이주와 멸실이 몰리면서 임대차 시장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은 기존 골조 등을 활용하는 리모델링이나 대수선(건축물을 해체하지 않는 수준의 주요 구조부 변경)에 비해 많은 자원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만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낭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함 랩장은 예상했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이 아직 살아나지 못하고 있으니 정부가 시장 회복 방편으로 다양하게 제안하면서 재건축 시장부터 활성화하려는 취지의 정책일 것”이라며 “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잘못하면 무분별한 재건축 바람이 불 우려도 있겠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그에 앞서 현재 부동산 시장이 재건축 규제 완화만으로 살아날 만한 여건이 아니라고 봤다. 그는 “아직까지 재건축 난립을 걱정할 정도로 시장에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재건축을 하려면 기존 주민들에게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공사비가 워낙 높아진 상태라 사업성을 충분히 가진 단지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비사업 패스트트랙은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는 방안인데 현재 시장은 집을 사려는 수요가 얼어붙은 상황이라는 점도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고 교수는 “수요 측 심리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가격에 공급이 돼야 한다는 요건도 있다”며 “분양가가 상당히 높아져 있어서 그런 점에서도 상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져도 그 뒤로 넘어야 할 관문이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맨 처음 받아야 했던 안전진단을 사업시행계획 인가 전까지만 통과하면 되도록 했지만 이 역시 결국은 넘어야 할 산이다. 정비구역 지정과 정비계획 수립, 사업 인가 후 입찰을 거쳐 시공사를 선정해야 하고 관리처분계획 인가까지 받아야 비로소 착공할 수 있다. 고 교수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진행한다고 인허가 단계에서 다 오케이 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짚었다.

건설업계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A건설사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고무적인 정책이지만 당장 시장이 바뀌거나 하는 영향이 있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진단을 안 한다고 해도 재건축을 하려면 추진위 단계부터 다른 절차는 다 거쳐야 한다”며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후속 규제들도 있을 텐데 실제 효과를 내기까지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정리가 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당사자들이 사업 추진에 얼마나 동의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A사 관계자는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고 금리도 높아서 시장 자체가 많이 얼어붙은 분위기에 이런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우리 빨리 재건축하자’고 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1기 신도시만 해도 용적률 등이 정확하게 정리가 안 돼 있는데 예를 들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용적률을 높여준다고 하면 문제 소지가 있으니 좀 더 지켜보는 관망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공사 입장에서 먹을거리가 늘어난다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조합이 과연 공사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옛날 같으면 재건축 물량이 나오면 덥석덥석 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이미 건설 현장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 물량이 늘어나면 품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B건설사 관계자도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1기 신도시의 경우 2027년에 착공해서 2030년에는 입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안전진단 하나 빠진다고 해도 갈 길이 먼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지금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들도 사업화로 가는 단계에서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대내외적 경제 여건이 극도로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번 대책이 시장에서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법령 개정 등 후속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야 강 대 강 대치’라는 정치 환경 속에서 이번 대책에 상당수 포함된 법률 개정사항이 원만히 처리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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