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교사 근무, 아름다운 한 시절을 이제 끝맺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미숙 기자]
지난 5일을 마지막으로 42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제 곧 학교를 떠난다.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져 후련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몸담았던 곳에서 벗어난다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3월 2일이 되어 출근 시간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 모를까, 아직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졸업식과 종업식이 끝나면 과학실에서 내 퇴임식 자리를 따로 마련한다고 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옷도 밝은 보라색으로 차려입었다.
변함없이 여덟 시에 학교에 들어섰다. 겨울방학을 한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이들 얼굴이 밝다. 마주치는 아이마다 "선생님 서운해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건넸고, 몇 녀석은 안기까지 하며 감동을 준다. 졸업식장에는 학부모회에서 각각의 담임 선생님 사진과 함께 내 얼굴이 들어간 대형 브로마이드를 세워 놓았고, 꽃바구니와 선물까지 주며 축하해 주었다. 그래도 단상에서 정들었던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돼 다행이다.
졸업식이 끝나자 퇴임식장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서둘러 지난밤 늦은 시간까지 끄적였던 퇴임사를 들고 과학실로 들어서니 어느새 후배 선생님이 다 모여 있었다. 이렇게까지 부담을 주기 싫었는데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교무부장의 사회로 식이 시작되었다. 그냥 간단하게 송공패나 전달하고 서로 인사하며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듯 많이도 준비했다. 42년 동안 열 개 학교에 근무한 약력 소개를 시작으로 송공패 전달, 친구인 교장의 선물 증정, 후배 교무부장의 축사, 우리 가족이 전하는 영상 편지, 6학년 세 반 아이 한 명 한 명이 전하는 말까지 생각지도 않았는데 풍성한 자리가 됐다.
▲ 축하 케이크 후배들이 준비한 사랑 가득한 케이크를 들고 |
ⓒ 최미숙 |
몰래 영상 만드느라 수고했을 선생님들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더군다나 가족들 얼굴이 영상으로 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전날 저녁 아들딸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도 아무런 말도 비치지 않았고, 남편조차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아 몰랐다. 오늘만큼은 울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는데... 울먹이는 교무부장의 축사를 듣고 있자니 굵은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마지막 순서로 퇴임사를 하는데 의지와는 다르게 여러 선생님 앞에서 울먹였다. 영광스런 자리를 만들어 준 후배들의 사랑과 정성에 감격한 눈물이었다. 풍성한 꽃다발, 오늘 옷 색깔과 어울리는 보라색 꽃으로 장식한 케이크까지 벅찬 감동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는 언어를 총동원해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언어 실력 짧은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과 사진 찍으며 퇴임식을 마쳤다. 요즘은 다들 간단하게 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끝나는데 친구 교장과 후배 선생님들 축하받으며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게 돼 더없이 행복했다. 앞으로 남은 생은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아이들과, 같이 근무했던 후배들이 준 추억을 되새기며 내내 흐뭇할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책 낸 시간 잊지 못할 것
2년제 교대 마지막 학생으로 스물둘에 교사 발령을 받고 예순셋에 학교를 나간다. 이 일을 참 오래도 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여덟 살부터 정년까지 인생 대부분을 학교만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그동안 거쳤던 곳에서 만났던 수많은 제자와 동료들을 기억해 봤다. 선생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들었던 학생과 학부모와 함께해서 행복했다. 그 아이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교사로서 내가 존재했다. 돌이켜 보니 아이들과 함께했던 기나긴 세월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특히 글을 배울 환경이 되지 않아 뒤처진 1학년 아이에게 매년 한글을 가르쳐 글을 깨치게 했고, 6학년 학생(희망자)과 1년 동안 글쓰기를 해 아이들 이름이 들어간 책을 만들어 준 일은 내 교직 생활 중 가장 보람있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이 맛에 기나긴 세월 동안 교단을 지킨 게 아닌가 싶다. 많이 힘들었지만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받아 어엿한 학생 작가로 첫발을 딛게 했다. 결과물을 손에 쥔 아이들이 뿌듯해한 것은 물론이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가슴 벅차고 흐뭇했다.
1982년 처음으로 담임한 제자가 그때 4학년이었으니, 지금은 다들 쉰 살이 넘었겠다. 돌아보니 실수와 시행착오도 참 많았다. 그땐 체벌이 허용되던 시대라, 답습하듯 아이들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다. 까까머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가을 운동회 준비한다고 한 달씩이나 운동장에서 매스 게임과 부채춤, 소고를 연습했던 순박한 그 시절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하면 좋으련만 그건 내 욕심일 것이다. 근무환경은 열악했지만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마지막 제자여서 영광이었다'는 뭉클한 그 한마디
집에 돌아와 6학년 친구들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틀어 다시 봤다. 지난 12월 내 생일날, 수업 시간 화장실 간다고 나간 녀석이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 깜짝 파티로 나를 놀라게 했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여전하다. 꾸중도 많이 들었으면서, 이 녀석은 헤어지면서까지 가슴 찡하게 한다. 나처럼 행복하게 정년을 맞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마지막까지 참 복 있는 인생이다.
'찬란했던 교직 생활 마지막 한 해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선생님과 같은 선배 교사가 되겠습니다.'
▲ 후배와 제자가 쓴 편지 퇴임식 날 후배와 제자가 써 준 편지 |
ⓒ 최미숙 |
학교 생활 3년 차인 후배 선생님과 제자가 건네준 손편지 글귀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이 느껴져 가슴 뭉클했다.
후배 선생님과 6학년 제자들 모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다. 나도 그대들과 함께여서 행복했어.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 이렇게 1년 하면 죽어요"... 내가 선택한 마지막 직업
- [단독] '결혼지옥'보다 더한 지옥, '고스톱 부부'의 1년
- '안보에 구멍난 정권'의 본색... 일본과 가까운 '세 장관들'
- 갑자기 왜? 윤영찬 민주당 잔류에 탈당파 당혹
- 의자 없는 4호선 '불편' '널널' 엇갈린 반응... 안전 우려도
- 경찰 "이재명 대통령·총선 다수 의석 막으려 범행...공범 없다"
- D-97... 10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노란 장미'와 '세월호 세대'
- 버려진 빨치산 소년, 그를 키운 건 지하운동가와 스님이었다
- 아이 망치는 괴물은 어쩌면 부모일지 모른다, 왜냐면
- 또 대통령 과 동기... 권익위원장에 유철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