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셔츠 카라 덕에 살았다…"목에 먼저 칼 닿았다면 치명적"

김민주, 안대훈, 위성욱, 정수경 2024. 1. 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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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60대 김모씨가 10일 오전 부산 연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혐의(살인미수)로 구속된 김모(67)씨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이재명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고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변명문(남기는 말)에 남겼다. 경찰은 흉기가 이 대표 와이셔츠 목깃(카라)에 먼저 닿지 않았다면 치명적 결과로 이어졌을 거라고 했다.


“李 대통령 안돼”… ‘남기는 말’ 전모 나왔다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10일 이 대표 습격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씨의 주관적인 신념이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졌고 사이코패스 검사는 정상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김씨를 상대로 한 심문과 심리ㆍ사이코패스 검사와 증거물 디지털 포렌식 결과 등을 종합한 분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습격 사건' 피의자 김모(67)씨가 범행 전 작성한 '남기는 말'이란 제목의 변명문 원본. 김씨의 범행 동기 등이 적혀 있다. 위성욱 기자

김씨가 쓴 '남기는 말'에 적힌 내용도 일부 드러났다. 김씨는 “사법부내 종북세력으로 인해 이 대표 재판이 지연돼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곧 있을 총선에서 이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 세력에게 국회가 넘어가고,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 세력에게 넘어갈 것”이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행했으며, 이런 의지를 알려 자유인들의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경찰은 김씨가 지난해 4월 남기는 말의 초안을 써 여러 번 고친 것으로 파악했다. 김씨는 남기는 말 8부를 인쇄한 다음, 이 가운데 7부를 주소가 적힌 봉투에 넣어 동네 지인인 A씨(70대)에게 건넸다. 김씨는 “성공하면 7부를 모두 발송하고, 실패하면 2부만 보내달라”고 A씨에게 부탁했다. 김씨 범행 소식을 들은 A씨는 약속대로 2부만 우체통에 넣었다. 가족에게 보낸 이 우편물은 배달되기 전 경찰이 압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나머지 5부는 A씨가 폐기했다. 수신처는 언론매체 등이지만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살인미수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흉기 개조, 휴대전화도 놓고 다녔다


구체적인 범행 과정도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해 4월 온라인에서 10만원을 주고 칼을 구매해 칼날과 칼등 부분 모두 예리하게 갈았다. 칼은 손잡이 5㎝, 날 13㎝ 등 총 18㎝다. 김씨는 칼자루를 빼 중이와 테이프로 감싼 뒤, A4 용지를 접어 그 안에 숨겼다. 범행 당일 들고 있던 플래카드 아래로 칼을 쥐고 있었으며, 위장을 위해 플러스 펜도 함께 쥐고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플래카드와 왕관 등은 김씨가 직접 만들었다.
김모(67)씨가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습격했던 사건 현장. 이 대표는 이날 새해를 맞아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하던 중이었다. 김씨는 10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위성욱 기자

이후 김씨는 지난해 6월부터 범행일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이 대표 일정을 따라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일정은 정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파악했다고 한다. 인천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등지다. 김씨는 이 대표 일정을 따라다닐 때 늘 흉기를 소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 1일 봉하마을에서도 김씨가 범행을 시도하려 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실패하자 김씨는 단념했고, 본래 귀가하려다 울산역에서 마음을 바꿔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매번 경호 태세 등을 살펴 가능하면 범행을 시도하려고 했으며 지난 2일 부산에서는 접근에 성공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습격 사건' 피의자 김모(67)씨 차림새를 경찰이 재연한 모습. 지난 2일 범행 당시, 김씨는 '나는 이재명'이라고 적힌 왕관 모양 머리띠를 쓰고, '총선승리 200석!'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지지자처럼 위장해 이 대표에게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위성욱 기자

용의주도해 보이는 김씨 행적도 나타났다. 그는 지난 1일 천안ㆍ아산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으로 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천안ㆍ아산역까지는 본인 승용차로 이동했다. 그는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에서 유심ㆍSD카드를 빼고 사용했다. 김씨는 또 (부동산)업무용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택시를 부를 때 사용했다고 한다. 천안ㆍ아산역부터는 주로 현금으로 교통비 등을 냈다.


“와이셔츠 목깃 없었다면 치명적 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정현 기자
수사본부는 서울대병원 의무 기록과 흉기 감식 결과 등을 근거로 피습 때 이 대표 목에 흉기가 2㎝가량 들어왔고, 이로 인해 목빗근 피부에 1.4㎝ 자상, 내정경맥은 9㎜ 손상됐다고 밝혔다. 혈관은 60%가량 손상됐다고 한다. 경찰은 피습 때 이 대표가 입었던 와이셔츠 사진을 공개하며 “흉기는 와이셔츠 목깃을 먼저 관통했다. 만약 목깃이 칼날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칼에 와이셔츠 바깥쪽은 1.5㎝, 안쪽은 1.2㎝ 찢겼다.
김모(67)씨가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습격했던 부산시 강서구 대항전망대 위치. 이 대표는 이날 새해를 맞아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하던 중이었다. 김씨는 10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위성욱 기자
경찰은 현재까지 범행을 공모한 공동정범이나 배후 세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송치된 이후에도 검찰과 협력해 공범 여부 등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주·안대훈·위성욱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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