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갈 돈이면 일본 간다"…국내외 여행객 뜸한 韓 쇼크 덮쳤다
회사원 최모(33)씨는 지난해 동생과 함께 일본 여행을 두 차례 다녀왔다. 5월 교토, 12월 도쿄에서 2박 3일씩 보내면서 '맛집 투어'에 집중했다. 엔저(低)에 따른 경비 절약 등을 고려해 국내 여행 대신 일본을 택했다. 최씨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여행 못 갔던 한을 풀려고 고급 식당 위주로 갔다. 환율 때문에 일본 체감 물가가 내려간 거 같다"면서 "올해는 친구와 삿포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 제주도는 차량·호텔 등 경비 부담이 큰 편이라 같은 돈이면 일본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쌓인 여행수지 적자가 코로나19 유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와 '보복여행' 경향을 타고 일본·동남아 등으로 출국하는 발길이 크게 늘어난 반면, '유커'(遊客·중국 관광객) 등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 여행객 회복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해서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여행수지(잠정)는 직전 10월(-6억4000만 달러)의 두 배인 -12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11월(-13억5000만 달러) 이후 5년 만에 동월 기준 최대 적자 폭이다. 한은은 "동남아·중국 등 관광객 감소로 여행 수입이 줄어든 반면, 출국자 증가로 여행 지급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1월 여행수지 누적 적자 규모는 112억90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출입국이 주춤했던 2020년(-58억2000만 달러), 2022년(-79억3000만 달러) 등을 훌쩍 넘겼다. 팬데믹 전인 2019년(-118억7000만 달러) 수준에 육박한다. 12월 여행수지도 '마이너스'가 확실시되는 만큼 2019년 연간 적자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여행으로 버는 돈보다 빠져나가는 돈이 훨씬 많은 셈이다.
실제로 국내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원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내국인 출국자는 2030만명에 달했다. 2022년 연간 출국자(655만4000명)의 3배를 넘고, 2800만명대였던 2018~2019년에 근접한 수치다. 지난해 7월부터 꾸준히 월 200만명 넘게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코로나19에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한 셈이다.
특히 거리가 가깝고 비용 부담이 줄어든 일본의 인기가 높다. 일본정부관광국이 집계한 지난해 1~11월 일본 방문객 가운데 한국인은 618만명으로 전체 국가 중 1위였다. 2019년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5.7% 늘었다. 베트남 등 가까운 동남아로 나가는 한국 여행객도 많아졌다.
반면 지난해 11월까지 관광 등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입국자는 999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96만7000명)의 10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2019년(1750만3000명)과 비교하면 57% 안팎이다. 예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상대적으로 갈 길이 먼 셈이다.
특히 국내 관광을 주도해온 중국이 176만6000명으로 2019년(602만3000명)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 게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여름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여행을 허가하면서 증가세가 빨라지긴 했지만, 경기 부진과 한·중 관계 악화 등으로 '큰손' 유커 귀환 효과가 아직 적은 셈이다.
9일 저녁 어둑해진 명동 거리에선 단체로 움직이는 중국 여행객은 보기 어려웠다. 간식 포장마차 앞에도 동남아나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다. 화장품 가게 등에선 일본 여성 여행자를 향해 일본어로 호객을 이어갔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동아시아가 유럽·중동 등 다른 지역보다 여행 수요 회복이 더딘 편이다. 특히 중국은 최근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고 여행 빗장을 늦게 푼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유커를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 회복이 빨라지면 한국 경제에 긍정적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한은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 관광객이 100만명 증가할 경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0.08%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엔데믹(풍토병화)이 자리 잡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늘어날 거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국내서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 발길도 줄지 않는 만큼 국내 관광 수요를 끌어올려야 여행수지가 개선될 거란 목소리가 나온다.
이훈 교수는 "유커에만 의존할 수 없는 만큼 외국인 관광의 다변화·활성화가 같이 가야 한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 K컬처 이벤트 등을 키워 해외 여행객의 체류 기간과 관광 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익근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중소도시들이 서로 비슷한 축제 등을 진행하기보단 독특한 브랜딩 전략을 세워 국내 방문객들이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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