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아이 망치는 괴물은 어쩌면 부모일지 모른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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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희 기자]
▲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 11일까지 운영하며 이용료는 1,000원이다. 일∼목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금, 토,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
ⓒ 임은희 |
지난해 12월 22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문을 열었다. 서울도서관을 오가며 공사기간 내내 기웃거리던 아이들은 방학하자마자 스케이트를 타자고 성화였다. 방학이 되었고, 스케이트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둘째 아이를 위해 스케이트강습을 예약했다.
오전 9시 50분, 강습을 신청한 사람들이 모였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였고 스케이트 강사들의 지시에 따라 헬멧, 장갑, 스케이트화를 착용하고 형광색 조끼도 입었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되어도 아이들은 스케이트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여러분 한 줄로 서주세요. 어머님들은 잠시 비켜주세요.'
강사들이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지만, 몇몇 부모들은 아이들 옆에 붙어서 모든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준비를 마쳤거나 혼자 준비한 아이들은 서서 입장을 기다렸고, 강사들이 정확하게 다섯 번을 외친 후에야 어머님들이 아이들에게서 물러났다.
아이들이 강사를 따라 천천히 강습 장소로 이동했다. 초보자들이라 강사들의 설명과 주의사항을 들으며 스케이트장 가장자리에 마련된 안전바를 잡고 이동했는데 어머님들은 이동하는 아이들을 따라 움직이며 스케이트 타는 법을 미리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강사의 이야기보다 엄마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이동했다.
강습 장소에 도착하자 강사들은 안전에 관한 주의사항을 언급하고 순서에 따라 아이들을 한 명씩 지도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안전바를 잡고 다른 아이의 강습을 지켜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길어야 10분 정도였는데 그 시간에도 어떤 부모들은 안전바를 잡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아이는 짜증을 부렸다.
'엄마, 저리 좀 가.'
걱정하는 마음은 같은 엄마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강습에 참여하는 아이의 시간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관찰을 멈추고 아이들의 강습현장을 보기 시작했다. 강사들은 얼핏 보기에도 20대 청년들이었다.
▲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기 스케이트 강사가 강습 중인 아이가 혼자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빨리 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아이가 스스로 해낼 때까지 지켜보며 응원했다. 잘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
ⓒ 임은희 |
아이들은 제일 먼저 스케이트화를 신고 걷는 법을 배웠다. 넘어졌을 때 잘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곡선으로 천천히 전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사들은 조심스러웠고 친절했다. 안전에 관한 부분을 설명할 때는 단호했지만 개별강습을 할 때는 자상했다.
아이들이 넘어지기 전에 미리 잡아주기보다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달려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던 아이들은 강사들의 태도에서 안전함을 느꼈는지 용기를 내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가르칠 땐 손을 잡아주고 안전하게 아이가 배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따라 하기 시작하자 손을 떼고 앞에 서서 아이가 스스로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도했다. 옆에서 속도를 맞추며 아이가 스스로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사들은 자신감이 붙은 아이의 뒤로 가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강사는 아이들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았다. 아이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가르치는 속도를 조절했다. 어떤 아이는 라바콘을 세워두고 연습했지만, 또 다른 아이는 여전히 안전바를 잡고 8자 그리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얼음가루를 털어주며 다시 도전할 수 있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처음에는 강사가 일으켜 세워야 했던 아이들은 어느덧 혼자 일어나 툭툭 털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의 강습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가 옆에 있는 아이들은 연습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엄마가 주변에 없는 아이들은 강사에게 집중하고 대기 시간에는 연습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강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켜보니, 옆에서 부모가 딱 붙어있는 아이들은 이 모든 순간을 놓치고 있었다.
어떤 강사는 춤추는 시늉을 하며 아이를 웃게 만들기도 하고, 또 다른 강사는 아이를 바라보며 웃음 띤 얼굴로 '잘하고 있어!'라고 외치기도 했다. 혼자 연습하다 우연히 그 장면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감돌았다. 더 잘하는 아이를 질투하느라 심통이 난 아이도 없는 듯 보였고, 못한다고 짜증내거나 시무룩한 아이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즐거움으로 가득 찬 강습이었다.
50분이 강습이 끝나자 강사들은 입장할 때처럼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천천히 내보냈다. 스케이트장 중간에는 어머님들이 간섭할 수 없으니 오롯이 강사와 아이들의 시간이었다. 엄마가 없어도 아이들은 무사히 스케이트장을 가로질러 출구로 나왔다.
아이가 혼자 해낸 순간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실패도 경쟁도 없는 스케이트 강습 현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15년 넘도록 두 아이를 양육해 온 나는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았다. 아이들의 처음은 늘 설레면서도 두려워서 기쁜 마음과 걱정이 공존했었다.
▲ 스케이트장을 가로질러 나오고 있는 강사와 어린이들 |
ⓒ 임은희 |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아이의 성장에만 기뻐하며 살았나.
아이의 건강이 최우선이다 말하면서도 학습경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밤잠을 줄이는 행동을 묵인하지는 않았나.
친구들을 배려하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면서도 친구와의 경쟁에서 내 아이가 매번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자전거나 킥보드를 이용할 때 헬멧 착용이나 택시 뒷좌석 안전벨트에 무신경하진 않았나.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아이의 실패에 지나치게 낙담하고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니 제대로 해야한다고 협박한 적은 없었나.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이던, 아이의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빨리 막을 내린다. 아이들은 여전히 어린데... 세상은 덜 먹어서 무조건 마르고, 덜 자면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칭송하고 부러워한다. 아이들의 가장 큰 세상인 부모의 재빠른 태세전환을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부모로 살아보니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사회나 학교가 아닌 바로 '엄마'라는 정체성의 '나'였다.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걸맞지도 않은 것을 시키기도 하고,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일해야 한다'며 아이가 자연스럽게 차별과 편견을 하게 만드는 나. 독서는 중요하지만 공부에 필요 없는 독서는 할 필요가 없으니 생활기록부에 올라갈 정도로만 지식과 교양을 쌓으라는 저렴한 가성비 학습전략을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종용하는 나. 아이를 망치는 괴물은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일지도 모른다.
강사들의 모습을 통해 엄마인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반성했다. 착하게, 정의롭게, 베풀며 살라고 말하는 것과 모순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많이 사랑하고 응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가 나서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잘 살아갈 힘을 갖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사람의 순리대로 살 수 있도록 나는 내 욕심을 잠재우고 뒤에서 지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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