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국은 주적" 첫 발언…러에 무기 대는 공장서 위협

정영교 2024. 1. 1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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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공장을 시찰하면서 우리나라와 "전쟁을 피할 생각 없다"라며 위협했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주적"으로 재규정하면서 대미·대남 위협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지난해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영토완정'(完整)의지를 피력한 데 이어 주적 개념까지 끌어들여 한·미를 향한 '강대강' 대적투쟁 기조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북한은 그간 상황에 따라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거나 주적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입장을 바꿔왔지만, 김정은이 직접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건 처음이다.


또 "전쟁의지" 강조


김정은의 주적 발언은 '국방경제'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증산을 독려하고 있는 군수공장 현지지도에서 나왔다. 노동신문은 10일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중요 군수공장 시찰에서 김정은이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했다고 전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2022년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 공개 연설을 통해 남측에 의해 코로나19가 북에 유입됐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보복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2021년 10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억제력이 특정 국가나 세력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미국과 남조선은 우리의 주적 대상에서 배제됐다"고 밝혔다. 그러다 김여정이 2022년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 코로나19가 남측으로부터 유입된 것이라며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이라고 주장했다. 필요에 따라 한국을 주적 개념에 넣었다 뺐다 하더니 이번엔 이례적으로 김정은이 직접 주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김정은은 전쟁 의지도 또 강조했다.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면서다. 이어 "대한민국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감히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 언급은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외교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김정은의 언급과 관련 "대한민국이 북한을 상대로 먼저 무력사용을 한 적이 없는데 "대한민국 초토화"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한반도에 인위적으로 긴장을 조성해보려는 시도는 결국 북한 정권 스스로에게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의 주적 발언은 최근 군수공장 현지지도와 북한군의 군사행동에 담긴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실질적인 전쟁준비 강화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공장을 시찰하면서 우리나라와 "전쟁을 피할 생각 없다"라며 위협했다. 노동신문, 뉴스1


대놓고 미사일 과시


김정은은 지난 5일에도 고체연료 방식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의 이동식발사대(TEL) 공장을 방문했다. 이번엔 대남용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KN-24(북한판 에이태큼스·화성-11나)를 발사하는 TEL 수십 대가 진열돼있는 공장에 방문해 자신들의 미사일 능력을 과시했다.

공장 한편에 걸려있는 포스터에는 북한의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배경으로 "죽탕쳐버리자 아메리카제국을"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김정은의 발언이 사실상 한·미를 동시에 겨냥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실제 김정은은 "우리와의 대결 자세를 고취하며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적대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제일로 중시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자위적 국방력과 핵전쟁 억제력 강화"라며 대결 의지를 강조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외부 문제를 부각해 내부적으로 국가의 일체감을 높이고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의 콜린 즈위코 기자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김정은이 방문한 군수공장 한켠에 '죽탕쳐버리자 아메리카제국을'이란 문구가 담겨있는 선전화 걸려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콜린 즈위코 X계정 캡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산 탄도미사일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현재 러시아에 공급할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총력 가동 중인 군수공장에서 내놓은 발언이란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김정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뒷배를 봐주면서 뚫린 제재의 구멍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높이 평가" "만족" 내부결속도 노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이 "주요 군수공장에서 중요 무기체계 생산에 새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제1선대연합 부대들과 중요미사일 부대들에 대한 신형 무장 장비 배비(배치하여 설비) 계획을 훌륭히 집행해 나가는 데도 만족을 표했다"고 전했다. 이는 국방 분야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민심이반을 방지하고 내부결속을 도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경제난을 비롯한 국내 문제로부터 주의를 환기하려는 포석이라는 얘기다.

한편 김정은이 언급한 '새 기술'은 포탄 등 지원을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은 기술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 5일 북한이 서해 서북 5도 지역에서 첫 포격을 감행한 직후 러시아 군용기 한 대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사실이 확인됐다. 항공기 항로 추적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Flightradar24)에 따르면 지난 6일 오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출발한 러시아 군용기(IL-62M)가 함경남도 함흥 상공을 지나 이날 정오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공장을 시찰하면서 우리나라와 "전쟁을 피할 생각 없다"라며 위협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고려항공이 지난해 말부터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 파견한 노동자들의 국내 송환을 위해 정기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지만, 러시아 군용기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기술 이전 등을 포함한 양국 간 군사협력이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통일부는 이날 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북한이 전쟁준비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한·미 확장억제 증강 등 억제력 강화에 대해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북한의 망동은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고취시켜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려 내부 위기를 모면하고 우리 사회를 흔들어 보려는 구태의연한 전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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