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北미사일 공격' 추가 공개한 美 "적대감 고조, '실망'하고 있다"
미 백악관이 9일(현지 시간) 북한의 미사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재차 공개하면서 북한을 겨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한·미·일을 포함한 48개국 외교장관 등도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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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러시아 돕는 세력 제재”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지난 6일에도 북한산 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우크라이나에 발사했다”고 밝혔다. 발사된 미사일 중 최소 한발 이상이 하르키우에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4일 백악관은 “지난달 30일과 지난 2일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고 공개한 적이 있다.
브리핑에서 커비 조정관은 미국이 오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러 무기 거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알러 그는 “이러한 무기 거래를 계속 폭로하고 이를 돕는 이들을 제재하겠다”고 밝혀, 향후 북한 등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브리핑 직후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면서 한·미 양국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이전과 러시아의 전쟁 활용을 규탄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자료를 통해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인도·태평양과 전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의 안보 과제에 대한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러에 맞선 강력한 한·미 공조를 의미하는 말로 풀이된다.
48개국 외교수장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
이날 한·미·일을 비롯한 48개국 외교장관과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공동성명을 내고 “북·러간 탄도미사일 거래와 러시아의 북한 미사일 사용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발표했다.
공동성명에도 북한을 겨냥한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외교장관들은 성명에서 “러시아가 북한 미사일을 사용한 것은 북한에 기술적·군사적 통찰력을 제공한다”며 “미사일 수출의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무기 제공을 대가로 첨단 군사 기술을 전수받는 내용의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미 국무부도 이날 북한의 위협에 대한 중앙일보의 문의에 대해 “남북 협력(cooperation)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데 필수적”이라며 대화 기조를 전제하면서도 “북한의 지속적인 대화 거부와 한국에 대한 적대적 수사를 고조하는 데 대해 실망(disappoint)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도발에 따른 미국의 피로감과 우려가 누적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랑곳하지 않은 北…“대한민국은 주적”
반면 김정은은 10일 “대한민국은 우리의 주적”이라며 도발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지난 8~9일 주요 군수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며 한국을 주적(主敵)으로 지칭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2021년 10월 2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은 우리의 주적 대상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한 적 있다. 김여정은 2022년 4월 5일 담화에서 “이미 남조선이 주적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고 했다. 다만 김여정은 4개월 뒤인 같은해 8월 담화에선 한국을 재차 “남조선 괴뢰는 불변의 주적”이라며 말을 바꿨다.
과거와 달리 김정은이 직접 한국을 주적으로 지칭한 것은 의미가 다르다.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대남노선을 전환한 데 이어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특히 김정은이 '주적 발언'을 한 곳은 미국이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미사일을 만드는 공장이다. 김정은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공장들이 제1선연합부대들과 중요미사일부대에 대한 신형무장장비 배비(配備)계획을 훌륭히 집행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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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더는 안 된다 판단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이 평화주의보다 적대주의적 노선이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를 향한 호전성은 경제가 파탄 난 북한 내에서 군사정책의 정당성을 강화해주고, 대외적으로는 중·러의 호감을 얻는 정치적 이득이 된다”고 분석했다.
크로닌 석좌는 이어 “김정은은 치명적 무력 사용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다면 미국이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올해 말 핵실험이나 저궤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더 큰 도발을 감행하기 위해 자신의 호전적 행동에 대해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미리 시험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에서 국방 분야를 담당하는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본지에 “미국은 이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전쟁에 지쳐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미국은 최근 북한의 수많은 도발과 제한적 공격에도 분쟁 확대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동시에 북한에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거듭 밝혀온 것”이라고 말했다.
베넷 연구원은 “김정은의 무책임한 협박은 한·미를 향해 핵무기에 대한 부담을 증폭시키려는 의도”라며 “미국의 현재 상황 때문에 북한에 큰 대응을 하지 않는 점을 활용해 김정은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전쟁이 난다면 핵무기를 쓰게 될 거란 점을 한·미를 향해 설득하려고 하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김정은의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약 도발 수위를 더 높일 경우 미국도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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