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결국 '유죄 0건'…"뇌물 아냐" 김형준 항소심도 무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사건’으로 기소됐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2020년 7월 이후 총 3건을 기소한 공수처는 ‘유죄 0건’ 기록을 벗지 못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부장판사 구광현‧최태영‧정덕수)는 10일 오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사건에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박수종 변호사도 무죄를 받았다.
공수처는 앞서 김 전 부장검사가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 단장이던 2015~2016년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수사와 관련한 편의를 제공한 뒤 뇌물을 수수했다며 기소했다. 구체적으로 ▶2016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술값 합계 187만원(인당 93만 5000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고, ▶2016년 7월 27일 김 전 부장검사와 이른바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에 함께 연루된 고교 동창 김모씨에게 박수종 변호사가 1000만원을 대신 줬다는 혐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1000만원은 두 사람간 금전거래, 나머지 향응은 객관적 직무관련성은 있으나 미래의 직무와 관련 없고 피고인들에게 뇌물의 인식도 없었다”며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1000만원은 빌린 것, 술값은 친해서 낸 것”
재판부는 특히 같은 검사 출신 박수종 변호사가 김 전 부장검사와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갈등을 빚던 김씨에게 대신 건넨 1000만원을 “차용금이 아닌 뇌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1심과 동일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사건 이전에도) 피고인들은 여러 차례 차용증 변제약정 없이 금전거래를 하면서 박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에게 빌린 돈을 갚거나, 먼저 돈을 지급해 박 변호사가 사용한 사실이 있다”며 “이 사건 1000만원도 김 전 부장검사가 빌렸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1000만원을 전달하고 영수증을 남긴 점이 통상 은밀하게 이뤄지는 뇌물 전달방식과는 차이가 있고, 이후 2016년 8월 22일 반얀트리 호텔에서 만나 변제했다는 주장에도 출차기록, 예금인출 기록 등을 보면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봤다.
김 전 부장검사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박수종에게 먼저 1000만원을 우선 지급해달라고 하고 곧바로 비용을 보전해줬다’며 ‘선사용 후변제’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위 진술만으로는 차용금으로 받은 게 아니라 '뇌물'로 받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거라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직무관련성은 있지만 뇌물은 아냐” 1심과 동일
나머지 술자리 향응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예금보험공사 파견 신분이던 김 전 부장검사의 직무와 향응 사이 객관적인 직무관련성은 존재하지만, 뇌물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두 피고인은 2006년 중앙지검에서 함께 근무하며 친분이 시작됐고 예보공사 파견 이후 상당한 금전거래 및 사생활 대화 등으로 비춰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며 “사건과 관련해서만 만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합수단 구성이 바뀌면서 김 전 부장검사가 전화를 걸었던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사건 담당) 안 모 검사가 나가고 수사팀이 교체됐으며, 파견 해제 이후 다시 증권수사를 담당할지도 불분명하므로 박 변호사가 김 전 부장검사에게 청탁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수종 변호사가 ‘같이 술마시면 내가 계산하는 경우 많았지만 김 전 부장검사가 계산하기도 했다, 이 사건 술값은 내가 계산한 건 맞다’고 밝힌 법정 증언도 짚으며 “피고인들이 이 건으로 뇌물수수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하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통상 선물의 의미를 벗어난 금품수수 및 박 변호사가 뇌물로 인식하고 향응을 교부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형준 “정치적 억지 기소” 공수처 “상고 여부 검토”
김형준 전 부장검사는 과거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기소돼 고교 동창 스폰서 김씨에게서 5년간 51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이때 1000만원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무혐의 판단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스폰서 김씨가 재차 김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에게서 뇌물을 받았다고 경찰에 고발했고, 이 사건을 공수처가 넘겨 받아 기소한 ‘공수처 1호 기소’ 사건이다.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는 항소심 선고가 이뤄지는 20분 내내 서서 선고를 들었다. 김 전 부장검사는 항소심 선고 직후 “2016년 대검 특별수사팀에서 무혐의로 수사를 마친 것을 재탕한 ‘억지 기소’였음이 더욱 명백해졌다, 공수처가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며 “최소한 상식이 있다면 정치적 억지 기소, 사기 협박범에 근거한 형사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은 공수처는 “판결문 내용을 받아본 뒤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호 사건 항소심마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공수처는 ‘무죄’ 릴레이를 계속 이어가게 됐다. 2호 사건이었던 부산지검 수사기록 위조 검사도 지난 9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고, 3호 사건이었던 ‘고발사주’ 손준성 검사장은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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