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에 수백만원 보너스…"육아휴직 더 팍팍 써라" 응원[K인구전략]
유연근로·육아휴직 강화한 '남초' 회사
동료가 휴직하면 수백만원 응원수당도
"IT직군 퇴사 0명, 매출은 매년 두배↑"
편집자주 - 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지난달 21일 오전 8시35분.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진광일씨(38·남)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섰다. 일주일에 두 번, 아내가 출근하는 날이면 진씨가 아이들의 등원 준비부터 단지 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아이를 직접 데려다주는 일까지 도맡는다. 아빠의 양손을 붙잡은 이찬군(5)과 이환군(4)의 시선은 5분가량의 짧은 등원 길 내내 진씨를 향해있었다. "오늘 데리러 오는 사람은 아빠야" 진씨의 말에 아이들은 진씨를 향해 활짝 웃으며 "우와 오늘은 전부 아빠랑 같이하네"하고 소리쳤다. 유치원에 도착한 진씨는 무릎을 꿇고 이찬군을 바라보며 "씩씩하게 놀고 와"라고 말했다. 이찬군은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아빠에게 "이따 봐 아빠"하고 웃어 보였다. 바로 옆 어린이집으로 발걸음을 옮긴 진씨는 이환군을 꼭 안았다. 이환군은 진씨와 동행한 기자를 향해 익살스럽게 혀를 내밀고 어린이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을 직접 등원시키는 날은 진씨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됐다.
진씨가 처음부터 육아에 동참했던 건 아니다. 진씨는 고등학생 때 만난 아내와 2017년 결혼에 골인했다. 이듬해 아이가 태어났고 아내는 출산과 육아 문제로 10년간 해오던 의류업을 그만둬야 했다. 당시 다니던 직장은 보수적인 문화 탓에 야근이 잦고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부족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은 딱딱하고 수직적인 곳이었거든요. 어휴, 아기 있다고 회식 안 가고 그런 거 없었습니다. 무조건 다 가야 했어요. 그때는 문제의식이 없었죠.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회사에 다니니 아내가 혼자 집에서 육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씨의 삶은 가족친화제도가 자리 잡힌 중소기업 모션으로 이직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진씨가 다니는 모션은 경기 용인시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소속 근로자가 41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이다. 오전 7~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하는 이 회사의 유연근무 덕택에 진씨가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진씨의 아내는 빈 시간을 활용해 재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자격증을 취득해 병원 일자리도 얻었다. 아내가 출근하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은 자연스럽게 진씨가 육아를 맡는 가사분담이 이뤄졌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진씨는 아이를 아빠가 데려다주면서 가정의 화목함은 물론 일의 집중도도 올라갔다고 말했다.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아내한테 언제 집에 오냐는 잔소리를 듣잖아요? 그럼 남편도 스트레스를 받아 싸우고요. 그러다 보면 아이 때문에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죠. 하지만 저는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집안 분위기가 더 좋아졌어요.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딸이 일을 하고 밝아지니 저를 더 예뻐하시고요. 집에서 싸우는 일이 없으니 일에 몰입하게 된 것도 아주 큰 변화입니다.”
육아모임하는 아빠 직원, 응원수당 받는 동료
가족친화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건 진씨뿐만이 아니다. 모션은 남성 근로자가 34명으로 전체 82.9%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성평등·육아휴직·유연근로 제도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 대부분의 남성 근로자들이 일·가정 양립과 성평등, 육아에 무심한 채 입사하지만 제도를 이용하면서 생각이 바뀐다.
지난해 초부터는 워킹대디(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 소모임 '아빠는 모션 히어로'가 생겼다. 2021년 경기도가 시행한 남성육아모임 ‘아빠하이’에 참여했던 근로자가 제안해 시작됐다. 소모임에서는 자녀가 있는 남성 직원들이 매달 모여 육아공부를 한다. 아이를 빨리 낳은 직원들이 아빠로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육아 팁을 전수하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워킹대디 소모임에 아이들을 위한 육아키트를 지원하거나, 단체 가족여행을 지원한다.
입사한 후 출산을 결심한 사내 1호 커플도 탄생했다. 이기성씨(32·남)는 2020년 4월 모션으로 이직한 후 2022년 5월 직장동료와 결혼했다. 당시만 해도 이들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는 ‘딩크족’이었다. 이씨는 “우연히 워킹대디 소모임 가족여행을 따라갔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는 부모의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면서 “회사가 소속 근로자를 넘어, 근로자 가족의 행복까지 보장해준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 아이를 갖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가장 호평한 가족정책은 ‘동료 응원수당’이다. 모션에서는 소속 직원이 육아휴직을 가면 업무량이 늘어나는 직원에게 휴직자 임금절감분을 추가수당으로 지급한다. 수당은 팀 전체에 일괄적으로 배분하지 않고, 분담 업무량을 고려해서 차등 지급한다. 팀 동료들이 걱정돼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직원이 없도록 배려하기 위한 조치다. 업무가 늘어나는 직원들은 최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보너스를 받기 때문에 “다들 육아휴직 좀 팍팍 쓰라”는 농담까지 생겼을 정도다.
경영 측면에서도 가족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전 직장에서 연봉을 낮추고 오거나, 이직을 멈춘 직원들이 부지기수다. 세 자녀의 아버지인 최종영씨(43)는 이날 육아모임에 동참한 기자에게 “연봉이 좀 줄어도 유연근로제가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게 아내의 바람이었다”며 “남편이 다니는 회사를 아내가 좋아해 준다는 심리적 지지가 크다”고 얘기했다. 같은 모임에 소속된 김진환씨(37)는 “아내가 허리를 다쳤을 때 반반차를 자유롭게 쓰고 재택근무하며 일할 수 있었다”며 “그간 이직을 많이 해왔지만 현재로서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가족친화경영으로 회사도 성장한다…"매출 매년 두배씩 늘었죠"
김성철 모션 대표 역시 결혼·육아정책이 단순 복지로 그치지 않고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 김 대표는 “결혼이나 육아로 눈치를 보지 않을 때 근로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근속에도 영향을 끼친다”면서 “IT 인력을 붙잡아두는 게 중요했는데 이직이 잦은 개발직군의 경우 2019년 창사 이래 퇴직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유연근로와 휴가를 늘리면 생산성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와 달리 매출도 매해 두 배씩 늘었다.
다만 가족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이 손쉬웠던 건 아니다. 김 대표는 “처음 가족친화정책을 도입할 때 내부직원들 사이에서도 진짜 사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육아휴직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대표는 “육아휴직자가 인사고과와 승진에서 불이익이 없다는 걸 근로자들이 직접 봐야 한다”면서 “인사 평가도 최소한 전년과 동일해야지, 평가가 떨어지면 누가 휴직을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기업에 ‘일·가정 양립’이 원활히 정착되지 않은 이유로는 ‘신뢰 부족’을 꼽았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는 기업가가 가족친화정책을 도입하면 회사가 좋아질 거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면서 “휴가를 다 써도 회사는 100% 생산성을 유지하고 직원들도 업무 몰입의 강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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