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없는 지하철' 타보니…"아이디어 낸 사람 상 줘야" 감탄
“안내 방송 드립니다. 우리 열차는 객실 내 혼잡도 완화를 위해 3호 차를 의자 없는 칸으로 시범 운영 중입니다.”
10일 오전 7시 당고개역에서 서울 지하철 4호선을 탑승한 승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자가 없어 휑뎅그렁한 객실을 연신 촬영하거나 “서서 가야 하네”라며 의자가 있는 일반 칸으로 이동하는 승객도 있었다. 1년째 별내별가람역에서 출근 중인 장태원(53)씨는 “평소 몸이 끼일 만큼 붐비는 구간인데 맨눈으로 봐도 널찍해서 쾌적하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는 출근길 지하철 혼잡도 완화를 위해 4호선 열차 한 칸의 객실 의자를 제거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4호선의 열차 한 칸의 최고 혼잡도는 193.4%로 지하철 1~8호선 중 가장 높았다. 혼잡도 175%는 승객의 ‘몸이 밀착하고 무릎이 닿는 정도’로, 200%는 ‘몸과 얼굴이 밀착. 발이 밟히고 악소리가 나는 정도’로 분류된다.
공사는 객실 의자를 없애면 12.6㎡의 탑승 공간이 확보돼 해당 칸에 42명을 더 태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량 비용은 범 시트, 난로 추가 설치 등으로 8400만원이 들었다.
공사에 따르면 평소 가장 혼잡한 구간은 당고개역~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다.
실제 이날 기점인 당고개역에서 두 정거장 지난 노원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오전 8시 23분 열차가 혜화역에 도착하자 의자 없는 칸의 혼잡도는 150%까지 올랐다. 하지만 의자 없는 칸은 승하차가 무리 없을 만큼 공간이 남아 있었던 것에 비해 일반 칸은 발 디딜 틈도 없어 일부 승객은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만 했다.
의자 없는 칸에 탄 승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매일 길음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출근하는 노만수(52)씨는 “백팩을 메고도 덜 부딪혀서 좋다. 아이디어 낸 사람한테 상 줘야 한다. 다른 노선까지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쌍문역에서 탑승한 이동규(25)씨도 “평소보다 덜 붐비는 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령층 등 노약자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혜화역에서 탑승한 나금주(62)씨는 “의자가 없으니까 버틸 힘이 있는 젊은 남성들이 많이 탈 것 같다”며 “손잡이가 있다 해도 나처럼 허리가 아픈 노인은 틈바구니에서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사는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의자를 철거한 자리에 선반 없는 미끄럼 방지판, 지지대, 손잡이를 설치했다. 또 노약자석·임산부석 등 교통약자배려석 9석은 그대로 남겨뒀다.
의자 없는 칸은 출근 시간대에만 1회 운영되고, 향후 퇴근 시간대 등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이영교 서울교통공사 차량개량팀 부장은 “1년간 시범운영을 시행한 뒤 다른 노선 확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근·이아미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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