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1인분 시키니 달랑 150g…외식업계 '국룰'이 바뀐다
“삼겹살 1인분이요? 가게 열고 처음으로 200g에서 150g으로 줄였어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요.”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16년 차 부대찌개집 사장 이주영(57)씨는 몇달 전 국내산 생삼겹살 메뉴 1인분 중량을 50g 줄였다. 계속 오르는 돼지고기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1인분 1만3000원이라는 기존 가격을 그대로 두면서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중량이 150g 정도라고 했다. 이씨는 “직장인 단골이 많다 보니 가격을 올리기 어렵다”며 “멀리 있는 마트까지 가 줄 서서 싼 식재료를 사 오고, 시골 부모님 댁에서 나물을 캐와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 현상이 계속되며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가격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고기 1인분 중량을 줄이고, 공깃밥과 라면 사리를 1000원이 아닌 1500~2000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중앙일보가 상암동 일대 국내산 생삼겹살집 20개를 살펴보니 같은 지역인데도 중량이 제각각이었다. 1인분이 200g인 곳은 한 개뿐이었다. 1인분 150g은 7개, 160g과 180g인 곳이 각각 5개, 170g과 190g인 곳이 각각 한 개로 조사됐다. 가격은 1만900원~1만9000원으로 양과 꼭 비례하지는 않았다.
삼겹살집 20곳 중 ‘1인분=200g’은 한 곳
삼겹살은 외식비 동향을 알 수 있는 대표 품목이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시 전국 40개 지역에 있는 식당의 각기 다른 중량의 삼겹살 1인분 평균 가격, 1인분 중량인 200g으로 환산 시 평균 가격 등 두 번의 삼겹살 가격 통계를 제공한다.
지난해 서울 지역 삼겹살 200g의 평균 가격은 1만9211원으로 2021년(1만6866원)보다 13.9% 올랐다. 삼겹살 200g 가격이 2만원에 육박하자 식당들은 중량을 줄였다. 식당 운영 9년 차인 A씨는 “2015년 1인분을 150g으로 냈을 때 파격이었는데, 이제는 보통 수준”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에서 일하다 지난해 10월 고깃집을 차린 황태순씨는 “중량을 줄이는 꼼수가 아니라 손님들의 가격 심리 방어선에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강조했다.
10년 만에 바뀐 수입 ‘맥주 4캔’ 할인
마케팅 공식도 바뀌고 있다. ‘수입 맥주 4캔 묶음’과 ‘라면 2+1 판매’의 공식 파괴가 대표적이다. 최근 GS25는 10년 만에 수입 맥주 4캔 묶음 행사를 3캔 묶음으로 바꿨다. 2014년 4캔 1만원에서 2022년 1만1000원을 거쳐 지난해 1만200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더는 가격을 올리기 부담스럽자 맥주 캔 수를 3개로 줄이고 가격을 1만원 이하인 9000원으로 맞췄다.
이마트는 30년 동안 지켜온 라면 ‘2+1 묶음’ 할인 행사를 3개 묶음 9900원으로 바꿨다. 기존에는 같은 종류의 라면 두 묶음을 사면 한 묶음을 덤으로 줬지만 이제 종류에 관계 없이 라면 세 묶음을 9900원에 판매한다. 고물가 시대 장바구니 필수 아이템으로 꼽히는 라면을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하게 고를 수 있게 해 고객을 유인한다는 의도다. 이마트 관계자는 “더 비싼 프리미엄 라면을 살 때는 3개 묶음을 고르는 게 유리하다”며 “선택의 폭을 넓혀 장기적으로 매출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명품업계는 연초 가격 인상 줄이어
저마다 고물가 대응책을 내놓는 가운데 연초 가격 인상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에 제동이 걸린 식품업계는 조용한 반면 비교적 영향을 덜 받는 외국계 명품 회사는 연초부터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섰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이날 일부 시계와 주얼리 가격을 4~5% 인상했다. 시계 J12 33㎜는 기존 827만원에서 865만원으로 4.6% 가격이 올랐다. 샤넬코리아 측은 “환율 차이로 국가별 가격 차이가 있어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에르메스도 샌들과 가방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평균 10~15% 올렸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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