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띠 부자된다" 출산율 반등…청룡해도 '길띠' 덕볼까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자정.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차병원에서 산모 임모(38)씨가 제왕절개로 아들 ‘아홍이(태명)’를 낳았다. 임씨는 “결혼 12년 만에 난임을 극복하고 가진 첫 아이”라고 소개했다. 아홍이는 엄격히 따지면 용띠 해인 2024년 갑진년(甲辰年) 세상에 나온 첫 아이는 아니다. 띠는 음력으로 따지는 만큼, 양력으로는 2024년 2월4일부터 2025년 2월2일 사이 태어난 아이가 용띠라서다. 갑진은 청룡(靑龍), 즉 푸른 용을 뜻한다. 위대하고 신비로운 존재에 비유돼 아이를 낳기 좋은 해로 꼽힌다. 청룡의 기운이 가파른 저출산 추세마저 거스를 수 있을까.
9일 통계청 '인구 동향'을 분석한 결과 길(吉)띠로 꼽히는 해마다 출생아 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해가 2007년 정해년(丁亥年) ‘황금돼지띠’ 해다. 2000년 64만명에서 2003년 49만5000명, 2006년 45만2000명 수준으로 급감하던 출생아 수가 2007년 49만7000명으로 반짝 상승했다. 출생아 수는 이후 다시 꺾여 2008년 46만6000명→2009년 44만5000명으로 하락세를 탔다. 2007년 당시엔 “600년 만에 한 번 오는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는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돌았다.
황금돼지해 반짝 오른 출생아 수는 현재까지 줄줄이 영향을 미쳤다. 이례적으로 출생아 수가 10% 가까이 급등한 영향으로 2007년생이 초·중·고에 입학할 때마다 경쟁률이 뛰고 일부 학교에선 ‘교실 대란’까지 벌어졌다. 내년에 대학 입시를 치르는 만큼 예년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황금돼지해 사례처럼 출생아 수가 종종 반등한 적이 있다. 21세기로 넘어가 ‘밀레니엄해’로 불린 2000년에도 출생아 수가 64만명을 기록해 1999년 62만1000명에서 반등했다. 길띠 해로 꼽히는 2010년 ‘백호 띠’ 해 출생아 수는 47만명으로 역시 2009년 44만5000명 대비 늘었다. 2012년 ‘흑룡띠’ 해도 출생아가 48만5000명으로 2011년 47만1000명보다 늘었다. 공교롭게도 길띠로 꼽히는 해나 이벤트가 있던 해에 출산율이 반짝 반등한 셈이다. 역시 길띠 해로 꼽히는 올해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인구 학계에선 길띠 해와 출생아 수 증가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본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출생아 수가 마냥 줄어든 것 같지만, 2005년부터 2015년까지만 해도 출생아 수에 증감이 있었다"며 "다만 2015년을 기점으로 출생아 수가 꾸준히 줄고 있다. 단지 길띠 해란 이유로 미뤘던 출산을 하거나, 일부러 아이를 '기획 출산'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길띠 해에 출생아 수가 늘어난 것은 순수하게 경제 상황과 맞물린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07년(황금돼지) 출생아 수가 늘어난 건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뒤 청년층이 결혼을 뒤로 미루는 현상이 심해진 영향으로 보인다. 출생아 수는 2006년에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2010년(백호)·2012년(흑룡)은 직전인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한 영향으로, 밀레니엄해인 2000년 출생은 말 그대로 ‘이벤트’로 보는 식이다.
인구 전문가들은 올해 출생아 수 반등을 비관적으로 본다. 2015년부터 출생아 수가 꾸준히 줄어든 데다, 지난해 월별 출생아 수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2명, 올해는 0.6명대가 예상된다.
다만 홍석철 저고위 상임위원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뤘던 혼인 건수가 지난해 전년 대비 2.9% 늘었다. 올해 출생아 수가 25만2000명으로 반등할 것”이란 이례적 예측을 내놨다. 홍 위원은 “일시적 반등을 상승 추세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2024년을 저출산 정책을 강화하고 재정을 투입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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