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과목 굳이 뭐하러 배우나”… 수능 경제, 교사도 학생도 외면
1.1%만 응시하는 특이과목 전락
2007년 16% 선택 이후 내리막길
학생들은 ‘진짜 경제 공부’ 희망
서울 강서구 A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올해 수능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달리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경제’ 과목은 선택하지 않을 작정이다. 경영·경제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해 선행학습하는 차원에서 이 과목을 택했지만 너무 어려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 학생은 “‘수능 경제는 외고생들이 많이 봐 경쟁이 치열하니 다른 과목을 선택하라’는 학교 선생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다”고 말했다.
한국의 학교에서 경제·금융 교육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식·채권·펀드 투자나 부동산 임대차 등 실생활에서 필요한 경제 지식을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다. 고교 교육과정에 ‘경제’가 있고 이는 수능 사회탐구 9개 선택 과목 중 하나지만 선택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9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4학년도 수능에서 경제를 선택한 학생은 4890명으로 전체 응시자(44만4870명) 중 1.1%에 불과했다. 사회탐구 영역 선택 학생(19만9890명) 중에서는 2.4%였다. 수능 ‘경제’ 선택자 비율은 2007학년도 16%를 정점으로 꾸준히 내리막을 걸어 2012학년도 6%가 된 뒤 지금까지 추세를 뒤집지 못하고 있다.
경제 과목이 외면받는 가장 큰 원인은 난도다. 수능 경제는 대체로 어렵게 출제된다. 모든 문제를 맞히면 높은 표준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A고의 한 교사는 “수능 경제는 어렵지만 제대로 공부하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어 외고생 선호도가 특히 높다”고 말했다.
일부 일반 인문계고에서는 수능 경제를 제대로 배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 수요가 적으니 가르치는 교사도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서울 은평구 B고등학교 한 교사는 “매 학기 수업 시수를 일정 이상 채워야 하는데 수능 경제는 요즘 한 학교에서 1개 반만 개설되므로 ‘정치와 법’ 등 다른 과목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면서 “개설 반이 많아 수업 시수를 손쉽게 채울 수 있는 ‘사회 문화’ 등과 달리 수능 경제를 가르치려면 2~3개 과목 수업을 준비해야 해 교사도 피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능 경제를 맡을 정규 교사도, 기간제 선생님도 구하지 못해 수업을 아예 개설하지 않는 인문계고도 있다.
경제 과목을 공부해도 금융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과목은 가장 마지막인 6단원이 '경제생활과 금융'으로 화폐와 이자율, 금융시스템, 신용, 자산 관리, 재무 설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수능에서는 6단원이 잘 출제되지 않아 '학생들이 한 번 훑어보고 마는' 부분으로 전락했다. 경제를 택하지 않는 학생은 고 1 '통합사회' 과목에서 금융시장 관련 내용을 잠깐 배울 수 있지만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다. 학생 때 배워야 할 기초경제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가 교육 과정에 '금융수학'까지 마련돼 있는 영국과 대조적이다.
학생들은 어려운 수능 선택 과목인 경제가 아닌 '진짜 경제 공부'에 목말라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0~11월 전국 초·중·고등학생 5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학생 경제 이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생의 45.4%, 고등학생의 51.4%가 "교내 경제 교육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중학생(46.1%)과 고등학생(52.3%)은 가장 받고 싶은 경제 교육 내용으로 '금융상품'을 꼽았다. 시장 수요와 공급, 비교우위 등 '기본 경제 원리'를 배우고 싶다는 의견도 중·고교생 모두에서 30%를 넘겼다.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과 같은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진짜 경제 공부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돈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는 중·고교생이 많으니 딱딱하고 재미없는 수능 경제가 아니라 실생활과 맞닿은 경제 수업을 마련하면 호응도가 높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B고 교사는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돈과 금융에 대한 학생 관심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실전 주식·펀드 투자나 금융기관·금융사 탐방 수업, 기업 분석 동아리 등 실효성 있는 경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문·이과를 떠나 학생 호응이 뜨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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