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철부지들이 다스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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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에드워드 히스 등을 마지막으로 세계대전의 참전용사였던 의원들은 모두 의회를 떠났다. 이때부터 철부지 문제아들이 정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가 쓴 '옥스퍼드 초엘리트'의 한 대목이다.
옥스퍼드 출신의 말만 번드르르한 철부지 엘리트들이 정계를 장악하면서 영국이 망가졌다고 비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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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에드워드 히스 등을 마지막으로 세계대전의 참전용사였던 의원들은 모두 의회를 떠났다. 이때부터 철부지 문제아들이 정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가 쓴 ‘옥스퍼드 초엘리트’의 한 대목이다. 옥스퍼드 출신의 말만 번드르르한 철부지 엘리트들이 정계를 장악하면서 영국이 망가졌다고 비판하는 책이다. 참전용사 출신의 정치와 철부지들의 정치, 이 둘의 차이에서 영국뿐 아니라 현재 세계의 많은 문제들이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1940~70년대 영국의 고위 정치인 대부분은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남성들이었고, 참전 경험은 이들을 진지한 통치자로 만들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내몰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또 전쟁의 참호 속에서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함께 지낸 경험도 이들의 정치에 도움을 줬다. 쿠퍼는 “이들의 진지함은 2차 세계대전 후 50년 동안 전반적으로 평화적인 국가 운영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썼다. 이들 이후 집권한 세대는 혁명, 독재, 기근, 내전, 침략과 같은 비극적인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운 좋은 세대다.
전쟁과 무질서의 시대를 맞으니 전쟁 경험자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된다. 국제정치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근작 ‘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에도 쿠퍼의 서술과 비슷한 대목이 있다. “진주만 이후에도 권력은 대개 참전군인들의 수중에 있었다. 현재의 정책 엘리트 집단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안전한 세대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고통받지 않았다. 그들이 비극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극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태가 잘못될 수 있으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종종 생긴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카플란이 강조하는 것은 ‘비극적 사고’,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나쁘고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을 늘 상정하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야 매사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하게 된다. 카플란은 그렇게 신중했던 정치가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아버지 부시는 2차 대전 때 해군 전투기 조종사,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지휘자였다.
핵무기 사용 재량권을 부여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는 몇 차례 위기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라는 참모들의 조언을 물리쳤다. 아버지 부시는 천안문 사태가 터졌을 때 언론이 요구한 중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수용하지 않았고,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이 붕괴할 때 소련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침묵했다. 또 걸프전 때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쫓아냈지만, 바그다드까지 밀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카플란은 “아버지 부시는 군사력을 사용하면서도 이에 관해 신중하고 비극적으로 사고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표현했다.
우리 세대는 비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동안 큰 전쟁이 없어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이 진행 중이고 다른 곳에서도 안전판이 보이지 않는다. 미·중 군사 충돌이나 한반도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전쟁 경험은 없지만 막 나가지 않고 충분히 자제할 줄 아는 지도자, 불확실한 안보 상황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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