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中, 대만 ‘교내 살인’ 대선 이슈화… 차이 총통의 민진당 흔들기
차이 총통은 득표 활동에만 열 올려
환구시보 등 “선거만 관심” 여론전
“개혁 없으면 반복될 것” 표심 술렁
미국과 중국, 중국과 대만(양안) 관계에 중요한 변수가 될 오는 13일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신베이시 중학교 여학생 사망 사건’의 파장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의 선거 개입 시도, 2030 표심 등이 막판 변수로 꼽히는 와중에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차이잉원 현 총통이 사망 사건 직후에도 선거에만 몰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안전망 이슈가 불붙었다.
8일 대만연합보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낮 신베이시의 한 중학교에서 3학년 여학생이 다른 학생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같은 반의 남자친구를 불러와 싸움이 커졌다. 남학생은 말싸움이 격해지자 갑자기 칼을 꺼내 상대 여학생의 목과 가슴을 찔렀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학생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밤 숨졌다. 대만 경찰은 가해 남학생과 교사 혐의를 받는 여학생을 공범으로 지목하고 모두 살인미수죄로 소년법원에 넘겼다.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이 사건은 대만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대만 교육부가 시행 중인 학생 휴대 위험물 관리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처벌도 미미해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된다는 비판이 일었다. 온라인상에선 “이는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대만 사회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라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이 사건은 ‘12·25 신베이중 목 베기 사건’으로 명명됐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를 교내 안전과 연결시키면서 차이 총통이 공언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무색해졌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차이 총통은 학생이 사망한 다음 날인 27일 SNS에 민진당 총통 후보 라이칭더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여기에는 “학생이 죽었는데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 차이 총통은 다음 날 학생과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민진당은 더 완벽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고 밝혔지만 뒷북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중국 매체들은 차이 총통에 대한 대만 주민들의 반감을 자세히 전하면서 민진당의 무능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3일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직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 제1야당인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가 ‘2강 1중’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2030의 표심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2020년 총통선거 때는 ‘홍콩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라는 대형 이슈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의제가 없어 2030의 표심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만의 선거 전문가들은 학비, 취업, 임금, 집값 등 일상 생활과 관련된 문제가 젊은층 표심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30 유권자는 대만 전체 유권자 1980만명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2030의 지지를 얻고 있는 커 후보의 선전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친미·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친중 국민당으로 양분된 선거 구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할 제3 후보에게 젊은층 표심이 몰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의사에서 정치인이 된 커 후보가 60대인데도 SNS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유머러스한 소통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 정치대 샤오이칭 교수는 HKFP에 “고도로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제3의 길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커 후보는 그간 “청색으로 대표되는 국민당은 중국에 너무 가까워졌고 녹색으로 대표되는 민진당은 너무 도발적”이라며 “청색과 녹색을 뛰어넘고 이념 대신 실용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4일 커 후보의 고향인 북부 신주시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는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은 커 후보를 아저씨나 삼촌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인 ‘아베이’라고 부르며 “아베이 당선” “아베이 힘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재외 국민의 표심에도 관심이 쏠린다.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는 대만에선 총통선거와 입법위원선거가 실시되는 4년마다 재외 국민 상당수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귀국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대만의 재외 국민 수는 약 200만명이고, 이 중 절반가량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4년에 한 번 투표하기 위한 귀국 여행에 수천 달러를 쓴다고 한다.
SCMP는 “대만 정당들은 재외 유권자를 중요하게 여기며 미국의 많은 대만 단체가 선거 때마다 귀국해 투표할 것을 독려해왔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부 단체는 유권자의 귀국 항공편과 숙박 예약을 지원한다”며 “지난해 미국을 찾은 모든 총통 후보는 현지 재외 국민 행사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중국에는 100만명 이상의 대만인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기업협회는 최근 10여개 항공사와 협력해 총통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할인 항공편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시민단체 경제민주연합은 대만기업협회를 가리켜 중국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 산하 단체라며 해당 조치는 중국의 선거 개입 행위라고 비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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