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감독·행정가… 獨 축구의 ‘카이저’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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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베켄바워는 독일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어린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해 4번의 리그 우승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4년 뒤 바이에른 뮌헨 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행정가로서의 커리어를 연 그는 2006년엔 월드컵을 독일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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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뮌헨을 최고 명문 이끌고
주장·감독으로 각각 월드컵 제패
수비 문법 깬 ‘리베로’ 공수 지휘
독일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베켄바워의 유족은 8일(현지시간) dpa통신에 “베켄바워 명예회장이 전날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다.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베켄바워는 독일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어린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해 4번의 리그 우승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당시만 해도 ‘명문’으로 통하지 않았던 뮌헨은 베켄바워의 활약 아래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1군 무대 승격을 이뤘고 강호 반열에도 들었다. 1974년엔 국가대표 주장으로 서독의 월드컵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카이저’라는 별명은 축구의 수비 전술 문법을 깨고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모습이 황제같다고 해 붙여졌다. 베켄바워는 커리어 초반과 후반 중앙 미드필더로 꽤 오래 뛰었으나 ‘리베로’ 포지션에서 특히 빛났다. 최후방에서 곧바로 중원을 향해 돌진하거나 정확한 전진 패스로 경기를 직접 풀어나가는 등 공격적인 요소를 더해 수비의 마지막이자, 공격의 시작점으로 역할했다. 전방의 미드필더나 공격수들을 진두지휘하는 강한 카리스마도 ‘카이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도자 및 행정가 커리어도 탄탄대로였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등장한 베켄바워는 1990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서 선수와 감독으로 각각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4년 뒤 바이에른 뮌헨 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행정가로서의 커리어를 연 그는 2006년엔 월드컵을 독일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도 역임했다.
그러나 말년은 깔끔하지 않았다. 2006년 월드컵 유치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독일 축구협회(DFB)의 조사에 이어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결국 부패 혐의로 스위스 법원에서 재판까지 받았으나 2020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했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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