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초저출산, 어떻게 할 것인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983년 인구대체수준인 2.1명을 밑돌기 시작하여 2002년 초저출산 기준인 1.3명을 돌파했다. 작년 4분기에는 역대 최저치인 0.6명대까지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인구감소가 예견되었으나 정부 대처는 안일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나는 지난 2009년 9월부터 1년간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일했다. 따라서 작금의 초저출산 현상에 대해 일단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초저출산이 가져올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지금 많은 지방도시가 소멸 위험에 직면했고 학령인구 감소로 2023년 신입생이 10명도 되지 않는 초등학교는 전국에 1587개나 된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국에 병역자원 감소가 얼마나 큰 안보적 위협이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저출산은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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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적 목표 나열식 대책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파격적 정책 필요
동거 등 다양한 가족제도 포용을
일관된 정책 위해 인구부 만들자
」
물론 반론도 있다. 인구감소로 인한 GDP 규모 축소는 기술혁신으로 막을 수 있고 1인당 소득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출산율이 결국 0으로 향하지만 않으면 장기적으로 인구분포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낙관론은 동태적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경제 파탄을 무시한 것이다.
정부는 2005년 6월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9월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든 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5년마다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 성적표는 여전히 처참하다. 저출산 정책의 개선을 위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목표를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기본계획은 ‘삶의 질 개선’이라는 추상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추진해야 할 정책이 200개가 넘고 예산도 간접지원 위주로 편성된다. 2022년 한 해 저출산 예산 52조원 중 육아·아동수당 등의 직접 지원액은 17조원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결혼하고 출산하길 원한다면 그들의 피부에 직접 닿는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으면 조건 없이 1억원을 지원한다거나 아니면 일정액의 출산 보너스와 함께 초중고 졸업까지 매달 100만원씩 주는 등의 지원책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저출산 정책의 대상을 결혼·출산을 원하는 청년으로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혼자 살고 싶은 청년을 설득하기에는 시간과 예산이 충분치 않다. 결혼·출산을 원하는 청년을 먼저 빨리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일단 주류가 되면 ‘이웃효과’로 나머지 청년들도 원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셋째, 결혼과 출산이 경제적으로 불리하거나 과도한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주택자금 대출과 주택청약이 미혼 청년에게 더 유리해서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미루는 ‘위장 미혼’이 많다. 그 결과 첫째 출산이 늦어지고 결국 출산율이 낮아진다. 주택 가격과 함께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 되어온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해서도 공교육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넷째,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여 ‘숨어 있는 출산율’을 확보해야 한다. 2015년 20만이었던 동거가구(비친족가구) 수는 22년 50만으로 증가하여 특례시 하나 규모만큼 많아졌다. 그러나 동거가구는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동거에 부정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동거를 제도권으로 수용한다면 사회 인식이 자연스레 개선되면서 숨은 출산율이 가시화할 것이다. 프랑스 평균 비혼 출산이 60% 이상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도 안 된다.
다섯째, 저출산 정책의 중심적 역할을 맡아 수행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저출산 정책이 부처 간에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한 지 오래다. 정책을 조율해야 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권한과 규모를 대폭 늘리고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기능과 예산을 끌어모아 일관성 있게 저출산에 대응할 수 있는 ‘인구부(가칭)’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저출산 완화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유도해야 한다. 저출산 정책의 성패는 결혼과 출산이 경제활동과 얼마나 양립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일·가정 양립 제도를 적극 수용하는 정책이 청년들의 일터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날 정부가 물적 자본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었던 것처럼, 저출산 대응에 나서는 가족 친화 기업에도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국민에게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하루빨리 명확한 신호를 주어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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