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경제∙안보∙교육은 보수 우위? 이런 착각이 몰락 자초"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지난 10여년간 관료가 보수당 장악
보신 뿌리박힌 관료·여당 동일체 돼
관료의 경직성으론 미래 못 이끌어
보수가 경제·안보·교육 우위라 착각
퇴행 막으려 '노아의 방주' 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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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은 두 번째 인물은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입니다. 국민의힘 탈당 직전인 지난해 12월 1일과 26일 두 차례, 그리고 27일 탈당 선언 후 전화 인터뷰까지 6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정치의 재구성'을 묻는 말에 "우리 사회가 누적된 갈등 총량을 버티기 어려운 단계에 왔다"며 "무슨 주제든 성역 없이 토론해야 풀 수 있고, 그게 젊은 세대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주 인터뷰는 탈당 최후통첩을 한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모임 '원칙과 상식'의 조응천 의원입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보수 몰락의 원인 진단과 관료 동일체에 대한 문제 제기 ▶대한민국 정치 혁신을 위한 신당의 지향점 ▶세대와 젠더 갈등 해법, 크게 셋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
(박성민)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물러난 후 박근혜·윤석열 정부로 이어지면서 보수 색채가 강해졌죠. 자유주의 세력이 안 보여요. 더불어민주당 쪽을 봐도 운동권 전체주의로 후퇴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2030은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보수주의를 용인하지 않아요. 한국 보수가 자유주의로 재구성할 수 있을까요.
A : (이준석) 보수주의냐 자유주의냐가 아니라, 관료 포획이 문제입니다. 지난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으로 보수가 헤게모니를 완전히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료 집단이 보수당을 장악한 채로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 보수의 본질적 가치보다 승진 만능주의 같은 영혼 없는 관료 행태가 보수당 문화로 내재화했어요. 관료와 보수 정당이 동일체가 된 거죠. 관료를 선출직 권력으로의 입문 경로로 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보수 정당은 공천 때마다 기재부 차관 하나, 몇 성 장군 하나, 이런 식으로 '드래곤볼 모으기'를 하거든요. 관료사회가 그걸 너무 잘 알아요. 민주당 정권에선 그런 입직 경로가 많지 않아요. 고위 관료들이 복지부동하다가 보수 정권으로 바뀌면 정치권에 들어가는 일이 반복될 겁니다. 보수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관료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A : 윤 대통령도 말만 세게 하지 제대로 지배하는 거 같지 않아요. 지난해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만 봐도, 고위 군인 몇 명 더 수사 못 해서 이 정권이 다 뒤집어썼잖아요. '엄정 수사하라' 한마디면 되는데, 누군가 '군 결딴난다'는 식으로 대통령에게 조언해서 군 고위급을 보호한 거 아닙니까. 관료에 포획되지 않으려면 국민적 인기가 필요하죠. 대통령 지지율 80%쯤 나오면 개혁 과제 던지면서 돌파하면 돼요. 그게 안 되니 지금 총선 고민하는 거 아닙니까.
A : 단순히 대통령이 관료에 포획 당하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관료의 경직성으로는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 기재부 고위 관료 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인이 여전히 기재부 관료인지 아니면 야당 의원인지 정체성 혼란을 보이더군요. 문재인 정부가 재난지원금 주겠다고 나설 땐 (예산운용권도 없으면서) 재정 건전성 운운하며 무조건 반대해서 야당 표만 깎아 먹고, 정작 여당이 된 다음엔 중요한 연구개발(R&D) 예산 깎는 데는 동의하고 자기 지역구의 달빛고속철도 8조원 증액은 오케이하는 식입니다. 스스로 무슨 정치를 하는지 모르는 관료 출신 보수 정치인이 많아요. 관료 출신이 득세하는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나 미래 비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박) 정치를 관찰해오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보수의 몰락이에요. 1990년 여당인 민정당 주도의 3당 합당 후 탄생한 민자당의 국회의원 수가 220명이었어요. 지금은 정반대죠. 몰락한 이유가 뭘까요.
A : (이) 보수가 경제·안보·교육만큼은 아직 우위라고 아직도 착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이명박 대통령의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공약을 기점으로 고도성장의 환상이 깨지면서 '경제는 보수'라는 등식이 점점 먹히지 않아요. 연평도 포격전과 천안함 폭침을 보면서 젊은 층은 보수가 집권한다고 북한 도발이 줄어든다고 믿지 못하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전교조 득세로 난장판 난다는 프레임만 내세웠지 성과로 보여준 게 없어요. 국민 보기엔 보수를 찍을 명분은 없고 '이재명은 안돼'라는 협박만 남았어요.
A : 업적의 붕괴가 비전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어요. 박근혜·윤석열 정부의 '빚내줄 테니까 집 사라'가 보수 어젠다의 핵심이잖아요. 젊은 세대에겐 와 닿지 않아요. 출산율 끌어올리는 것과 별개로 합계 출산율 0.6은 결혼한 부부 절반이 애를 안 낳는다는 거예요. 물려줄 대상이 없어요. 죽을 때 자산을 얼마 남기느냐보다 살면서 얼마나 행복하냐가 중요해요. 나이든 세대는 생애 주기가 길어졌으니 개미같이 쌓는 걸 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아도 부모 세대만큼 풍요롭게 못 살 바에요 차라리 부모 세대처럼 안 살겠다는데, 끝없이 '부모처럼 자산 축적 방법을 알려줄게'라고 하는 거죠. '50년 대출 열어줬는데 왜 집 안 사고 외제 차에 해외여행 다니느냐'면서요.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행복을 얘기했는데 그 뒤로 오히려 퇴행했죠. 새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보수는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을 수 없어요.
(박) 정치인은 업적·비전·이미지로 평가받죠. 가령 보수는 산업화, 민주당은 민주화라는 업적이 있죠. 업적이 과거에 대한 평가라면 비전은 미래에 대한 평가, 이미지는 현재에 대한 평가에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적 이미지의 정치 지도자가 잘 안 보여요. 민주당은 일단 젖혀두고, 국민의힘은 왜 그렇게 됐을까요.
A : (이) 보수의 업적 붕괴가 비전의 붕괴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요. 이미지는 인물에 투영되는 가치일 텐데, 더 나락으로 갔죠. 업적·비전·이미지가 다 무너져서 보수정당 타이틀로는 선거 캠페인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죠. 신당을 만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A : 제가 소금물 이론을 자주 말하는데요. 지난 2016년 총선 때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호남 인사(소금)를 빼가면서 민주당의 담수화가 이뤄졌죠. 덕분에 지난 2020년 총선 때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먹혔죠.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바른정당이 분화한 건 정반대 결과를 가져 왔어요. 서울 국회의원 중 나경원 빼고 전부 다 바른정당으로 갔거든요. 소금물에서 소금 아닌 물이 빠진 거예요. 더 짠물이 됐어요. 보수 정당이 152석에서 121석, 이제 100석 정도. 다음 총선은 100석 아래로 내려갈 거로 봐요. 이러면 점점 더 짠물이 돼요. 25% 정도 대선 지지율을 가진, 가장 짠 사람이 리더가 되겠죠. 제가 바른정당으로 옮겼을 때 봤던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 모습처럼요.
지난 대선 전은 말할 것도 없고 대선 이후 국민의힘이라는 소금물에 물을 더 부으려다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죠. 짠물만 붓는 지금까지의 보수 정당 문법대로는 지난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봤기에 거기서 탈피하려고 노력했어요. '왜 후보가 하자는 대로 안 하고 후보와 갈등을 빚고 두 번이나 가출했느냐'고 저를 비판하잖아요. 그렇게 하면 지는 거 뻔히 아니까요. 지고 나서 '그래도 네가 후보를 잘 모셨다' 이럴 거 아니잖아요. 지금 보수층이 저더러 뭐라 해도 나중엔 제 판단의 의미를 알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어요.
A : 그런데 제가 당 대표에서 물러난 후 국민의힘이 다시 퇴행했죠. 이대로는 보수 절멸이에요.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은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에요. 민주당의 180석 압승이라는 난장판에서도 이긴 사람들이거든요. 그 후 서울시장 보궐선거 크게 이기고, 또 대선·지선까지 이겼어요. 패배를 앞두고 있는데 승리의 경험밖에 없어요. 보수가 완전히 망했던 자유한국당 시절을 상상도 못 해요. 적당히 해도 또 승리할 거라고 착각하죠. 초선 의원들 만나면 '이기면 되는데 왜 이래' 소리를 해요.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에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 덕에 당시 고행은 4년 만에 끝났지만 앞으로의 고행은 10년, 아니 20년짜리일지 몰라요.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신당)를 띄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예요.
(박) 이 대표가 보수 정당 내에서 레드팀, 혹은 혁신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고 보는데, 적잖은 보수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가까워서 여당과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는 거라고 보는 거 같습니다.
A : (이) 저더러 어떤 대상을 비판할 때 기계적 중립을 지키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재명 대표 한 번 때리고 윤석열 대통령 한 번 비판하라는 거죠. 이 대표를 시원하게 깐다? 사실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거든요. 그런데 이 대표는 여러 혐의로 본인 재판 들락거린 거 외에는 지난 1년 반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요. 비판할 거리도 없어요. 그런데 윤 대통령 한 번 비판했으니 기계적으로 까야 한다? 보수 안에서 보수의 병폐를 자꾸 얘기하는 이유는 제가 집도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모르는 걸 바꾸라 마라 하는 순간에 그냥 평론가로 전락해요. 전 보수가 정화되면 자연스럽게 진보에 대한 비교 우위가 생긴다고 믿기에 이렇게 달려드는 겁니다. 당 대표쯤 되면 대통령 본인이 문제가 좀 있어도 충분히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대선 과정에서 실제로 그랬고요. 당이라도 제대로 끌고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죠.
(박) 국민의힘 안에 있을 때 대화가 가장 어려웠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A : (이) 소위 '핵관'이라는 익명 정치 하는 사람들이요. 권투장에 칼 들고 나타나는 식이에요. 통상적 정치를 안 해요. 이런 사람들과 정치를 해야 하나 싶다가도 '칼 들고나오면 나도 칼 들고 나가겠다'로 대응했어요. 당 밖에서는 보수가 담론의 장을 잃어버리면서 상식적 대화가 안 되는 지점, 음모론이 판치는 지경까지 갔어요. 양심상 부정선거론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어요. 나 하나 다치는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확장성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제가 앞으로 정치할 기반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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