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터미널의 추억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 773-1번지. 평택 북동쪽을 일컫는 ‘송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였다. 1989년 문을 연 송탄시외버스터미널 때문이었다. 서울과 인천, 고양·성남·오산 등 수도권은 물론 강원도와 충청도, 호남권을 오가는 19개 노선버스를 타기 위해 하루 평균 1200여 명이 몰렸다. 승객들을 위한 식당 등이 주변에 들어서면서 터미널 인근은 자연스럽게 번화가가 됐다. 이후 송탄 사람들의 약속 장소는 ‘터미널 앞’으로 통했다. 여느 중소도시의 터미널과 마찬가지로 만남의 장소가 된 거다.
이런 송탄시외버스터미널이 34년 만인 지난 1일 문을 닫았다. 버스가 들어오던 승강장은 텅 비었고, 환하던 대합실엔 불이 꺼졌다. 본인을 ‘송탄 토박이’라고 소개한 한 시민은 “추억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아쉬워했다.
터미널의 추억이 사라진 곳은 평택 송탄만이 아니다. 지난해 1월과 5월엔 경기도 고양 화정터미널과 성남시외버스터미널이 폐업했다. 같은 해 11월엔 서울 상봉터미널이 문을 닫았다. 2018년부터 최근까지 전국 버스터미널 326곳 중 31곳(9.5%)이 없어졌다. 어떤 이에겐 인생의 출발이었고, 또 다른 누구에겐 고향으로 돌아오는 종착역이었을 터미널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원인은 승객 감소로 인한 적자다. 전철과 KTX, 수서고속철도(SRT)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코로나19 이후 여객 수요가 격감하면서 버스 노선이 줄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시외버스(직행 및 일반) 승객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50.1%가 감소했고, 고속버스 승객도 41.3% 줄었다. 민간 터미널 운영사로선 경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평택시 관계자도 “팬데믹 이후 19개였던 버스 노선이 10개로 줄고, 하루 평균 승객 수도 100여 명으로 감소하면서 송탄터미널을 운영하던 민간 업체가 매년 1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폐업 이유를 설명했다.
터미널 부재의 후유증은 지역 주민이 감당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불편을 막는다며 임시 정류장을 마련했지만 대기 공간 부족, 화장실 문제 등 새로운 민원을 낳았다. 주변 상권도 함께 죽는다. 성남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터미널 폐업 이후 매출이 80% 가까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가평군이나 전북 임실군, 전남 광양시 등 일부 지자체는 폐업한 버스터미널을 인수해 직영·위탁 운영에 나섰다. 하지만 마냥 혈세를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 전문가들은 “터미널을 거점 위주로 통폐합하고, 폐지하는 터미널 부지는 도시개발로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내와 연애할 때 여기서 만났어요. 내 청춘도 같이 사라지는 것 같네요.” 송탄 터미널에서 만난 한 남성의 말이다. 터미널이 더는 추억에 머물지 않도록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최모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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