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심리만화경] 알고리즘, 생각의 외주화
오늘도 패배했다. 나의 절제력은 알고리즘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순식간에 3시간이 사라졌다. 유튜브에서 시청 기록을 바탕으로 내 취향인 영상을 추천해 주는 ‘알고리즘’의 자발적 노예가 된 것 같다. 그런데 나보다 더한 알고리즘의 팬이 있다. 나의 뇌.
뇌는 무척이나 게으르다. 뭔가 고성능 장치인 듯한 이미지이지만, 좀 허술하고 편법을 즐겨 사용한다. 뇌가 판단을 내릴 때 주로 ‘어림법’을 사용하는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완벽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경험적으로 발견한, 편리한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빠르고 효율적이긴 하지만 오류가 많다.
간단한 퀴즈 하나. r로 시작하는 단어가 많을까, 아니면 r이 3번째 철자인 단어가 많을까? 대부분 r로 시작하는 단어가 더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r이 3번째인 단어가 3배 정도 많다. ‘가용성 어림법’으로 판단한 결과인데, r로 시작하는 단어처럼 떠올리기 더 쉬운 경우 그 발생 확률이 높다고 판단해 버린다. 가정에서 가사를 분담하여 나눌 때 양쪽 모두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한 일만 잘 생각나니 자신이 상대보다 더 많이 가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뇌가 이처럼 대충 일을 처리하는 이유는 ‘피곤하니까!’이다. 인간의 복잡한 사고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아서, 뇌는 항상 과부하가 걸릴 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뇌는 가능한 한 쉽게 일을 하려고 하고, 틈만 나면 쉬고 싶어한다. 이런 뇌에 알고리즘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고민해서 검색하고 선택하는 데 필요한 인지적 노력을 대신해 주고 있다. 생각의 외주화인 셈이다. 편리하고 효율적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선택조차 맡겨지고 좁아져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상만이 존재하는 듯한 또 다른 가용성 어림법의 희생양이 되는 느낌도 든다. 가끔은 외주 계약의 파기를 고려해도 좋지 않을까?
최훈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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