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중일 바둑 천재소녀 삼국지
어린 소녀들이 바둑 두는 모습은 이채롭다. 더구나 그 소녀들이 바둑을 아주 잘 두니까 더욱 이채롭다. 세 천재소녀 김은지-우이밍-나카무라 스미레 이야기다.
유달리 추운 겨울, 이들 세 소녀의 대결이 바둑 동네를 화창하게 만들었다. 우승자는 김은지. 그러나 이들의 스토리는 이제 시작이다. 이들 앞에 길고 긴 대하소설이 기다린다. 세 소녀의 이력을 보자.
한국의 김은지는 2007년 5월생이니까 16세 8개월이 됐다. 벌써 9단이다. 지난해 12월 최정 9단을 꺾고 여자 기성 우승컵을 따내며 9단 맨 끝에 이름을 올렸다. 남자 고수들조차 두려워하는 금성철벽 같은 최정의 제국에 처음 균열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최정은 지난해에도 오청원배 세계대회서 우승하는 등 여전히 무적이었지만 김은지가 그 제국의 한 구석을 허문 것이다.
중국의 우이밍 5단은 2006년 11월생이니까 17세 2개월이 됐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대표로 나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때 김은지를 예선과 결승에서 두 번 만나 모두 승리했다. 사는 곳이 항저우인 우이밍은 “집 앞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인데 금메달을 놓칠 수 없다”고 공언했는데 그걸 실현한 것이다. 2022년에는 호반배 세계여자바둑 패왕전에서 중국대표로 나와 5연승하며 중국의 우승을 이끌었는데 이때 우이밍의 존재를 알렸다. 아직 개인전에서 우승한 이력은 없다. 별명은 소마녀. 마녀라는 별명을 지녔던 루이나이웨이 9단을 존경하기에 언론이 붙인 별명인데 우이밍도 좋아한다. 그녀가 루이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전망은 허언이 아니다. 여러 각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일본의 나카무라 스미레 3단은 2009년 3월생이니까 14세 10개월이다. 스미레는 세 소녀 중 가장 어리고 바둑도 가장 덜 여물었다. 일본에서는 스미레 때문에 화제 만발이다. 잘 알려진 대로 스미레는 한국 도장에서 바둑을 공부해 일본에 돌아가 프로가 됐고 그 후 이른 시간에 여자 기성의 자리에 올라 선풍을 일으켰으나 다시 한국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왜?”라고 묻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더 높은 수준의 환경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는데 사실은 일본에 만족하지 않고 기필코 세계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승부사적 야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자 기성전은 이달 18일부터 도전기를 치른다. 스미레가 방어에 성공하면 타이틀을 반납하고 서울에 오게 된다. 도전자는 17세의 우에노 리사 2단. 얼마 전 친언니인 우에노 아사미 5단과의 도전자결정전에서 승리했다. 10대 소녀 둘이 도전기를 치르는 것도 일본바둑 사상 처음이다.
김은지-우이밍-나카무라 스미레의 대결에서는 스미레가 2연패로 밀려났고 김은지와 우이밍이 결승을 벌여 김은지가 이겼다. 김은지 개인으로는 지난 여름 항저우에서의 패배를 설욕한 셈이 됐다.
이 대결을 바둑TV에서 해설했던 박정상 9단은 “김은지는 진중하고 우이밍은 자유분방하다. 스미레는 아직 수줍어한다”고 말한다. 바둑도 성격을 닮았다. 김은지는 두터운 기풍이고 전투에 강하다. 최근엔 형세판단에 자신감이 붙어 승부를 서두르지 않는다. 안정감이 커졌고 승률도 올라간다.
우이밍은 상대를 빤히 바라보는 습성이 있지만, 매우 쾌활하고 그야말로 통통 튄다. 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기풍도 발랄하고 창의적이다.
스미레는 내성적인데 또래들과는 매우 활발한 편이다. 기풍은 적극적인 전투형. 아직 기반이 약해 자주 역전을 당하곤 하지만 경험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기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스미레의 전투력이 궤도에 오르면 그야말로 볼만할 것이다.
이들 세 소녀가 바둑에 몰고 온 기운이 봄바람처럼 훈훈하다. 박정상 9단은 “성격도 다 달라서 이들로 인해 앞으로의 세계여자바둑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애에 걸친 이들의 긴 대결이 이제 막 시작됐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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