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서 만든 ‘모기 잡는 모기’, 뎅기열에서 인류 구할까
기후변화 영향으로 확산한 열대성 전염병인 뎅기열을 겨냥한 과학 방역이 올해 본격적으로 시도된다. 실험실에서 변형된 모기를 투입해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를 박멸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반도 역시 모기를 매개체로 한 뎅기열 영향권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이 실험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과학계는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 중 하나로 뎅기열을 막는 모기의 본격적인 투입을 꼽고 있다. 9일 과학계에 따르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024 년 주목할 과학계 이슈 10선을 지난 4일 선정해 공개했다. 이 중 하나가 뎅기열 퇴치 프로젝트다.
뎅기열은 뎅기 바이러스 감염 이후 3~14일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 오한 두통 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이는 감염병이다.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전염된다. 환자의 약 5%가 뎅기출혈열 뎅기쇼크증후군 등 중증 뎅기감염증으로 진행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중증으로 넘어갈 경우 환자의 사망률은 20%에 이른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어 골칫거리다.
해결사로 나선 건 비영리 단체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이다. WMP는 뎅기열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10년간 브라질 공장에서 질병 퇴치용 모기를 연간 50억 마리씩 퍼뜨릴 계획이다. WMP는 이집트숲모기에 특정한 박테리아를 넣어 뎅기열 등 질병 전파를 차단할 수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도 올해 주목할 만한 과학계 이슈로 뎅기열 퇴치 프로젝트를 선정하며 “(이 프로젝트가)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 질병에서 최대 7000만명을 지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브라질의 모기 공장 가동이 주목받는 건 뎅기열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500만건 이상의 감염 사례가 나오고 사망자가 5000명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엔 감염 사례가 50만명 수준이었지만 20여년간 10배가량 증가했다. 감염 사례는 2019년 52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던 2020∼2022년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다시 급증한 모습이다.
국내 환자 수도 늘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뎅기열 발생 사례는 201건으로 전년(103건) 대비 배 가까이 늘었다. 모두 해외에서 감염된 환자로 파악됐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기상이변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분쟁 등이 뎅기열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WHO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폭염과 홍수 등 기상이변을 꼽았다. 지난해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나타난 영향으로 발생한 기상이변이 뎅기열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이 보건 역량을 집중하면서 기타 감염병에 대한 보건 당국의 감시와 대처가 부족했던 점, 분쟁과 내전 등으로 인도적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늘어 뎅기열 초기 대응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 점도 원인이었다.
특히 뎅기열 청정지역이었던 한국도 점차 뎅기열 영향권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는 겨울이 있는 한국에서 월동할 수 없다. 그러나 제주도의 1월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서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온이 빠르게 오르는 만큼 한반도 상륙도 시간문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국 평균기온은 13.7도로, 각종 기상기록의 기준으로 삼는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국내 도심 지역의 모기 밀도도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매개체(모기, 참진드기 등) 밀도 및 감염율을 조사하는 ‘매개체 감시 거점센터 운영 사업’ 결과 도심 지역에서 모기 발생이 전년 대비 5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뎅기열의 전파력이 인구가 밀집한 환경에서 높아진다고 보고 있다.
WMP가 내세운 방역 도구는 ‘볼바키아(Wolbachia)’ 박테리아다. 볼바키아는 곤충 세포 안에 사는 공생 박테리아의 이름이다. 특히 암컷의 난자에 기생하며 짝짓기할 때마다 퍼져나간다. 잠자리와 나방, 초파리 등 곤충의 60%에 감염된다. 원래 모기에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 하수관에서 볼바키아균에 감염된 모기가 처음 발견됐다.
WMP 설립자인 의료곤충학자 스콧 오닐 박사는 1990년대부터 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에 볼바키아균을 집어넣어 뎅기열을 차단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세균 바이러스 복제를 차단하는 볼바키아균에 감염된 모기는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지 못한다는 점이 발견됐다. 볼바키아균이 모기의 몸속에서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기생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볼바키아균에 감염된 수컷 모기가 암컷과 짝짓기해 태어난 알은 부화하지 않았다. 이에 개체 수가 점차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2018년 호주에서 볼바키아균을 넣은 모기의 뎅기열 차단 효과가 최초로 확인됐다. 오닐 박사 연구팀은 호주 퀸즐랜드의 열대 도시인 타운즈빌 주민들과 볼바키아 박테이라에 감염된 이집트숲모기 400만 마리를 방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후 타운즈빌 지역에서 뎅기열은 사실상 박멸됐다.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생물적 방제가 성공을 거둔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다만 당시 연구는 비교 대상이 없었고 호주는 동남아시아, 남미보다 뎅기열 발생 자체가 적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속속 보고됐다. WMP는 2015년부터 콜롬비아의 벨로, 메데인, 이타귀 등의 도시에 변형 모기를 풀었다. 이후 연구진이 10년간 세 도시의 뎅기열 발생률을 비교해 보니 벨로와 메데인에서는 뎅기열 발생률이 95%, 이타귀에서는 97%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부터 진행된 인도네시아 욕자카르타 시험에서도 볼바키아 모기가 서식하는 지역에서 뎅기열 발생률이 77% 감소했다는 결과가 2020년 보고됐다.
이런 연구 결과는 올해 브라질에서 진행 예정인 대규모 뎅기열 박멸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브라질은 뎅기열 최대 발생국이다. 한 해 200만명 이상이 감염되고 약 1000명이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크다. 다만 아직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다. 지난해 브라질 5개 도시에서 이뤄진 시험 결과 니테로이에선 뎅기열이 69%나 감소했지만 리우데자네이루에선 감소율이 38%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볼바키아 모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볼바키아 모기는 야외시험에서 뎅기열 바이러스를 막는 데 상당한 효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지카바이러스나 치쿤구니아열 같은 다른 바이러스에는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뎅기열 병원체가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적응하고 우회하는 방법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오스왈드 크루즈 재단 루치아노 모게이라 수석 연구원은 “이번 시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며 “백신 등 다른 통합적인 방역 정책과 공공보건 수단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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