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여전히 찬바람 ‘오피스텔’, 마피 수두룩…유일한 희망 ‘주택 수 제외’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인천공항철도 환승역인 서울역 15번 출구로 나오면 등장하는 서울역 뒤편 만리재길.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 느껴진다. 곳곳에 이국적인 카페나 술집, 음식점이 눈에 들어온다. 일명 ‘만리단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만리재로와 청파로를 이어주는 교차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걸으면 서소문역사공원과 함께 새로 지은 신축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쌍용더플래티넘서울역’ 오피스텔이다. 2023년 7월 준공한 이 오피스텔은 한 개동이지만 576호로 제법 규모가 있다.
입지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울역에서 도보 10분 거리며 2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충정로역은 더 가깝다. 골목길을 따라 3분만 걸어도 충정로역이 나온다. 1호선과 2호선 환승역인 시청역도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도착 가능하다. 사실상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오피스텔로서 이만큼 좋은 입지를 갖춘 신축 오피스텔은 찾기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인정할 만한 위치에 있는 오피스텔이지만 요즘 이곳 분위기는 좋지 못하다. 준공한 지 6개월 남짓 됐지만 이미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 2000만~3000만원은 기본인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분양 당시 3억원 전후로 나왔던 전용 17㎡ 매물은 현재 대부분 2억원 중후반대 호가가 형성됐다. 중림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분양 당시만 해도 청약 경쟁률이 치열했지만 지금은 투자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해서라도 매도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며 “서울 내 오피스텔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도심 내 신축 오피스텔마저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오피스텔 시장은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나온 매물이 속출하고 있는가 하면, 인기가 줄어들면서 공급량 역시 대폭 감소하고 있다. 아파트 시장 침체로 주거용으로서 오피스텔이 갖고 있는 장점이 크게 줄었고 고금리 시대를 맞아 수익형 부동산으로서 입지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오피스텔 시장 침체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다만 일부 오피스텔 소유주들이 끊임없이 ‘주택 수 제외’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제 완화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찬바람 부는 오피스텔
거래량 반 토막에 경매 시장 한파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12월 20일 기준)까지 서울에서 이뤄진 오피스텔 매매 건수는 7685건이다. 2022년 같은 기간 1만4486건보다 6801건(46.9%) 줄어들었다. 부동산 시장이 나름 호황이었던 2021년 1만9245건보다는 1만1560건(60.1%) 급감했다.
전국 오피스텔 평균 청약 경쟁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21년 26 대 1에서 2022년 5.3 대 1, 2023년은 9 대 1을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나 금융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전세사기 사태로 임차인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오피스텔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래가 줄어들면서 가격 역시 떨어지는 추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 오피스텔매매가격지수는 1.3% 하락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 -7.35%, 인천 -8.11%, 5대 광역시 -3.58% 등 주요 지역 오피스텔 몸값이 모조리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힐스테이트청량리역’ 전용 21㎡ 매물 최저가는 2억5000만~2억6000만원 수준이다. 2020년 6월 분양 당시 해당 매물 분양 가격은 3억1400만원(최고가 기준)이다. 일부 최저가 매물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 2억원 후반대 호가가 형성됐다. 분양 가격 대비 최소 2000만~3000만원 낮다. 청량리동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요즘 주목받는 청량리역 일대에 대규모(954호)로 공급됐다는 점에서 2020년 분양 당시만 해도 엄청난 수요를 자랑했던 오피스텔”이라며 “지금은 투자자들이 마이너스 프리미엄을 감수하고 내놓고 있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경매 시장에서도 오피스텔은 찬밥 신세다. 2023년 12월 오피스텔 낙찰가율은 76.1%(29일 기준)로 2020년 9월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80% 아래로 떨어졌다.
거래는 줄고 가격은 하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급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전국 오피스텔 분양 물량은 2021년 5만6724호 → 2022년 2만6314호 → 2023년 1만6308호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오피스텔 연간 분양 물량이 1만실 안팎을 기록한 것은 2010년(1만4762실) 이후 13년 만이다.
오피스텔 수요가 나름 확보돼 있는 서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오피스텔 인허가·준공 현황’ 자료를 보면 2023년 분기별 오피스텔 인허가 물량은 1분기 1679호, 2분기 1269호, 3분기 662호로 가파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3분기만 보면 전년(2022년) 같은 기간(2389호) 대비 75% 가까이 급감했다.
아파트 대체재 장점 희석돼
최근 1~2년 동안 오피스텔 시장이 침체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금리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오피스텔은 결국 월세가 목적인 수익형 부동산이다. 수익을 가늠하는 핵심 요인은 금리다. 금리가 높으면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고금리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오피스텔은 수익형 부동산으로서 경쟁력을 잃었다.
대외 변수도 작용했다. 역전세난이나 전세사기 등 오피스텔과 관련된 여러 이슈가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면서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2021년 한때 오피스텔이 중대형 면적을 중심으로 각광받았던 이유는 ‘비싼 아파트 대체재’라는 점 때문이다.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는 오피스텔 관심이 높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아파트에도 수요가 몰리지 않는다. 아파트 대체재라는 장점이 사라지면서 오피스텔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관련 규제도 한몫했다. 오피스텔은 시행사 자체 보증으로 중도금 대출을 해주기도 했고 입주 후 잔금 대출로 전환해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중도금과 잔금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적용되면서 개인 소득이나 기존 대출 유무에 따라 잔금 대출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건축비 상승 등으로 오피스텔 분양 가격이 빠르게 치솟았다”며 “아파트에 비해 수요층이 두껍지 않고 경기 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으로 인해 오피스텔이 갖고 있는 매력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올해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오피스텔 시장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작은 변수는 있다. 바로 ‘주택 수 제외’ 여부다. 오피스텔 소유자들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비아파트총연맹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게시한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비아파트 규제 완화 요구에 관한 청원’ 글은 동의자 수가 5만명을 넘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넘겨졌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게시 한 달 안에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청원이 접수돼 관련 국회 위원회 등에 회부된다. 해당 글에는 오피스텔의 주택 수 제외 등 준주택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정부 또한 아파트를 대체할 주거 수단으로 오피스텔 공급량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질지 관심사다. 박상우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른 시일 안에 주택 공급이 가능한 부분을 찾아 규제를 우선 완화하고 도심 내 주택 공급이 많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 ‘오피스텔 건축 활성화’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 중 하나”라고 밝혔다.
건설업계 역시 현재 오피스텔 규제는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소형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주거용 오피스텔 주택 수 산정 개선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시기”라고 말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오피스텔이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되는 등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겠지만 지난 십수 년 동안 형평성 등을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며 “아파트 중심 주택 정책에서 벗어나 주거 시장 정책 범위 확대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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