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셀트리온’의 미래를 움켜쥔 사나이[CEO LOUNGE]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 이사회 의장(39)이 통합셀트리온 경영총괄 대표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베테랑 기우성 부회장과 김형기 부회장이 기존 사업을 담당하고, 서 대표는 이를 지원하는 형태다. 바이오시밀러는 물론이고 항체약물접합체(ADC), 마이크로바이옴, 이중항체 등 차세대 신약 개발을 통해 통합셀트리온을 ‘글로벌 빅파마’로 이끌 중책을 맡게 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서 의장 대표 선임을 두고 “갑작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였던 기 부회장과 김 부회장이 통합셀트리온 대표에 오른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서 대표의 경우, 그간 서 회장이 “오너와 전문경영인 역할이 다르다”고 강조해온 만큼 통합셀트리온 대표에 선임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가 많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 시험대에 올랐다”는 해석도 들린다. 동시에 서 회장이 그간 강조해온 ‘소유와 경영’은 공언(空言)이 됐다는 비판의 시선도 뜨겁다.
서 회장 ‘신약’ 비전 실현 기대감
셀트리온 측은 서 대표의 ‘전문성’을 높이 봤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서 대표는 바이오의약품 전문가로 그동안 바이오시밀러 제품 기획·개발은 물론 미래 성장동력 개척을 주도하는 등 셀트리온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며 “향후 본인의 전문 역량을 발휘하면서 조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적임자라는 판단에서 선임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서울대 동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명과학 부문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연구원 생활도 했다. 2014년 셀트리온 생명공학연구소에 입사해 제품개발부문장 등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램시마와 트룩시마, 허쥬마, 렉키로나 등 주요 제품의 연구개발과 임상·허가 등에 관여했다. 서 대표를 향한 서 회장의 신뢰도 상당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서 대표를 치켜세울 정도다. 서 회장은 지난해 3월 열린 셀트리온 정기 주주총회에서 “내 아들이라 데려다놓은 게 아니다. 카이스트 박사고, 제품 개발이나 신약 파이프라인 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서 대표가 풀어내야 할 과제는 여럿이다. 핵심 과제는 통합셀트리온 성패를 결정할 ‘신약 개발’이다. 서 회장은 “2030년 12조원 매출, 매출의 40%가 신약 파이프라인에서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전문가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신약 개발 첫 주자인 ‘짐펜트라’ 외에도 1~2개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신약 개발 초점은 항암제로 맞춰진 상태다. 자체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 중 2개를 올해 중 임상 1상에 진입시키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다. 적응증은 유방암과 위암이다. 신약 연구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플랫폼 확보에도 비용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셀트리온은 ADC와 mRNA(메신저리보핵산), 이중항체 등의 플랫폼을 갖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 부문 의지 ‘글쎄’
신약 개발과 함께 새 먹거리 발굴도 서 대표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셀트리온은 디지털헬스케어 등을 새 먹거리로 점찍어왔고, 서 대표가 디지털헬스케어 전담팀을 진두지휘했다. 셀트리온은 2021년 길병원과 함께 염증성 장 질환 관리 앱 ‘니어닥’을 선보였고, 2022년 과민대장증후군 환자를 겨냥한 앱 ‘과장님 케어’를 내놨다. 다만 다운로드 수와 이용자 수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는 예고했지만 아직 공개된 계획은 없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또 통합셀트리온 2030년 매출 추정치에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은 포함됐지만, 디지털헬스케어 관련 내용은 빠졌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서 대표가 직접 코딩도 할 만큼 앱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의지는 있는 것 같다”면서 “매출 추정치에 포함 안 된 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제품과 각종 진단 앱 등을 연계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업을 위한 대형 M&A 성과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서 회장은 지난해 3월 “오너만이 대규모 투자를 결단할 수 있다. 능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서진석 의장은 나와 제품 개발, M&A 관련 사업을 긴밀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지난해 말 일본 기업 M&A 가능성 등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대외적으로 공개된 추진 계획은 없는 상태다.
시장에선 지분 승계 방안도 촉각
지난해 8월 통합셀트리온이 추진되자 시장에선 “승계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배구조 단순화로 승계 작업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통합셀트리온 1단계 합병으로 ‘서정진 회장 → 셀트리온홀딩스 → 통합셀트리온 → 셀트리온제약’ 구조가 만들어졌고, 2단계 합병 이후에는 ‘서정진 회장 → 셀트리온홀딩스 → 통합셀트리온(3사 합병)’ 형태가 된다. 셀트리온홀딩스 지분만 일정 수준 보유하면, 셀트리온그룹 전체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서 회장과 셀트리온그룹은 공식적으로 승계를 부정해왔다. 서 회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승계나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합병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주들이 원했고, 많은 투자자 권유로 합병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편법으로 지분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도 서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며 “내 자식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일은 절대 없다. 회사 경영에는 이사회 의장으로 관여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 대표가 이사회 의장에 이어 통합셀트리온 대표 자리에 오르며 사실상 공언이 됐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장 관심은 서 대표의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확보 방안에 쏠린다. 현재 서 대표는 셀트리온홀딩스와 통합셀트리온 관련 지분이 없는 상태다. 가장 단순한 지분 확보 방안은 서 회장 지분의 상속·증여다. 다만 이때 막대한 부담이 뒤따른다. 서 회장도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사전 증여를 해줘야 승계가 되는데 이때 부담해야 할 증여세로 수조원을 내야 할 것이기에 승계 방안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후계자가 셀트리온홀딩스 지분을 유상증자나 시장 내 매입을 통해 사들이는 방안도 있지만 이 경우 역시 막대한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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