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차관 "책임 통감한다"…일타강사 문제, 수능·EBS 등장 논란

최민지 2024. 1. 9. 19: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7일 오전 수험생들이 부산 남구 대연고등학교 고사장에서 시계를 확인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나온 영어 문제 지문이 일타강사의 모의고사 문제 지문과 유사하고, EBS 수능 교재 감수본에도 실렸다는 의혹에 대해 교육당국이 결국 사과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차관 “수능-사교육 유착 차단 방법 강구”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 관련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9일 오후에 사교육 카르텔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수능 영어 문제와 EBS 수능 교재 감수본의 지문이 사설 모의고사 지문과 거의 일치한다는 논란이 일자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회의에는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방송(EBS) 관계자가 참석했다.

오석환 차관은 “EBS 교재의 집필 및 감수 과정에 대한 관리나 사교육 관련성이 제기된 수능・모의평가 문항에 대한 사후 대응이 미흡했다는 정황이 파악된 상황”이라며 “깊은 책임을 통감하며 수능과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사교육업체와의 유착 가능성을 더욱 철저히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관계기관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EBS 집필・감수 과정을 더욱 엄정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한편 EBS 집필, 감수에 참여하는 현직 교원의 겸직 여부를 더 철저히 점검하겠다”며 “수능 출제 과정 전반에서 카르텔 유발 요인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수능 이의신청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에도 보다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일타강사 모의고사 지문, 수능·EBS 교재 등장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
문제가 된 영어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 일부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이 한국에서 ‘정보가 너무 많아서’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된 건 지난달 15일이다. 수능 출제 시점인 2022년엔 출제진이 해당 글을 원문으로 접하고 발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지문은 한 입시업체의 일타강사가 수능 2개월 전인 2022년 9월에 출간한 영어 모의고사 문제집에도 포함돼 있었다. 지문 출처와 발췌한 내용도 같았다. 강사 문제집 지문은 마지막에 한 문장을 추가했고 몇몇 단어만 바꿨을 뿐이다.

수능 직후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내가 풀었던 대형 업체 일타강사의 사설 모의고사와 수능 영어 23번 지문이 똑같다”는 인증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도 문제 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이의신청이 127건 들어왔다. 하지만 평가원은 문항 오류가 없다는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우연의 일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난해 7월이 돼서야 교육부는 해당 의혹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지난 9일엔 해당 지문이 수능과 학원 교재뿐 아니라 EBS 수능 교재 감수본에 들어갔다 최종본에 빠진 사실을 교육부가 추가로 확인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제된 세 개의 다른 시험에 거의 동일한 지문이 등장한 것이다. 감사원은 교육부와 평가원이 뒤늦게 대처한 배경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믿었던 수능 출제 시스템의 허점…“검증 강화해야”


지난해 3월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서점에 EBS 수능특강 교재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교육계에서는 세 시험의 출제진 간에 유착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직 평가원장인 A씨는 “현직 교사 출신 수능 출제위원 중 좋은 문제를 낼 수 있는 분은 몇 없다”며 “워낙 출제 풀이 좁기 때문에 EBS 교재 출제위원에 중복 위촉되거나, 그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 겹치기 출제까지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교사 출신 학원 관계자도 “학원이 모의고사를 출제할 교사를 구할 때 참고하는 이력도 대부분 EBS 강의진, 교재 출제진”이라며 “세 개의 각각 다른 시험의 출제진이 중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로 유사한 문제가 출제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후 스크리닝 과정에서 유사한 문제가 걸러지지 않은 건 수능 출제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보통 수능 출제 전인 9월까지 평가원이 출간된 문제집이나 사설학원 모의고사, 유명 강사의 문제집은 ‘암행’까지 해가며 유사성을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9월에 출간된 강사의 문제집이 스크리닝 대상에 들지 못했다면 현 시스템에 허점이 있는 것”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