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논쟁…1400만 투자자 혜택이냐, 15만 부자 감세냐

이우림 2024. 1. 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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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을 석 달 앞두고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공매도 금지,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완화에 이어 ‘1000만 동학개미’ 표심을 자극할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주식시장에선 예고 없던 호재가 터졌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편에선 ‘1% 부자들을 위한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란 비판이 거세다.

2025년 시행될 예정이던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상품 투자로 얻은 시세차익에 대해 매기기로 한 세금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게 조세의 기본 원칙이지만 그간 주식시장에선 ‘큰 손’에게만 세금이 부과됐다.


주식 시세차익에도 세금 매기겠다…적용 대상 1%↓


구체적으로 보면 국내 주식을 거래할 때 매기는 세금은 크게 증권거래세와 주식 양도소득세 두 가지다. 투자자 모두에게 일관되게 적용되는 거래세를 차치하면 양도세는 개인투자자 중 대주주(금액으로는 50억원, 지분율로는 코스피 1%, 코스닥 2%)에게만 부과된다. 이 기준에 해당하면 양도차익과 보유 기간에 따라 22~33%(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로 양도세를 납부해야 한다. 2021년(당시엔 10억원) 기준 주식 양도세를 신고한 인원이 7000명이었던 걸 고려하면 사실상 일반적인 개미 투자자를 대상으로 양도차익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겠다는 기조였다.

반면 금투세가 적용될 경우 투자 수익이 5000만원을 초과하면 20%, 3억원을 초과할 경우 25%의 세금을 내야 한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주식 투자자(1440만명) 중 15만명(1.04%) 정도가 금투세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지난해 시행 예정이었으나 금융투자업계와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일면서 여야는 시행을 2년간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다 올해 윤 대통령은 돌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명분으로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그는 “대한민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기업은 많지만, 주식시장은 매우 저평가돼 있다”라며 “금투세를 폐지하고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부자 감세’라는 주장이 거세다. 양도세 납부 인원(7000명)보단 늘었지만 금투세가 부과될 대상은 여전히 전체 투자자의 1% 미만이라서다. 금융투자협회가 2019~2021년 주요 5개 증권사의 실현손익 금액 현황을 조사한 결과 수익이 5000만원 이상인 투자자는 3년 평균 6만7000명으로 전체 투자자의 0.9% 정도다. 1400만명의 개미 투자자를 위한 결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말 1400만 개인투자자를 위하는 정책이었다면 차라리 금투세는 그대로 두고 일반 개미들에게도 적용되는 거래세를 폐지하는 게 더 논리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요국도 거래세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주요국은 증권거래세가 없는 대신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등 양도 차익 전체에 대해 세금을 걷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금투세 도입 현황 및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자본소득을 단기 소득과 장기 소득으로 나눠 과세한다. 1년 미만 보유 상품에 대해선 고세율(10~37%)을, 1년 이상 장기 보유한 상품을 처분할 때는 저세율(0~20%)을 적용한다. 일본은 단일 세율로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걷는다.

주식을 매도할 때 손해를 보더라도 무조건 내야 하는 거래세보다는 수익에 대해 세금을 물리겠다는 조세원칙에 따른 것이다. 한국에서도 금투세를 도입하는 대신 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 발언으로 향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차준홍 기자


연간 1조원 세수 증대 효과 사라져


금투세가 폐지되면 연간 1조원 이상의 세수 증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투세가 시행되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세수는 1조3443억원이다. 지난해 역대급 세수 감소 상황에서 향후 금투세 폐지까지 이어지면 국가 재정 건전성이 더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투세 폐지에 찬성 의견이 많다.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할 경우 고액 투자자들이 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거 이탈할 것이라고 반박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대만의 경우 1989년 금투세격인 주식양도소득세를 부활시키자 주가가 폭락해 1년 만인 1990년 폐지한 바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내 주식시장에 돈이 들어오게 하고 수요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금투세 폐지가) 시기적으로 필요하다”라며 “1400만명 투자자를 위한 감세”라고 강조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금투세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돼 있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한국은 10대 경제대국이긴 하지만 주식시장은 후진적 요소가 많다. 우리랑 비슷한 수준의 나라 중 금투세를 도입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한국은 주식시장 레벨이 신흥국 수준이라 금투세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 “외국인 투자자는 금투세 부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개인투자자의 독박 과세가 된다. 공정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금투세 폐지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법 개정이 필요해서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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