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집 사라진다…초고속 통과된 '개식용금지법', 남겨진 과제는

나상현 2024. 1. 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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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개식용 금지법' 국회 농해수위 법안 소위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의 개 식용 문화가 사라지는 수순에 접어들었다. 1991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33년 만이다. 유예기간 3년을 두고, 2027년부턴 개사육농장, 보신탕집 등 개를 식용 목적으로 기르거나 도살·유통·판매하는 모든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동물보호단체는 일제히 환호했지만, 개사육 농장주들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경진 기자


국회는 9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 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식용 종식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보신탕 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에서 민감한 사안이지만, 개식용 종식에 대한 여야 의견이 일치하면서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법안이 처리됐다. 지난해 12월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이후 최종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식용 목적 개 도살 ‘최대 3년 징역’


법안에 따르면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개로 만든 식품을 유통할 시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개사육농장주는 물론이고 개를 도살하고 유통하는 업자, 개고기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보신탕집 업주 등 개식용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모두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단, 처벌 조항은 법안 공포 후 3년이 지난 2027년부터 적용된다.

아울러 법안 공포 직후부턴 개사육농장과 보신탕집, 개 식용 목적의 도살·처리·유통·판매 시설 등은 모두 신규 또는 추가로 설치·운영하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기존 업주들은 시설의 명칭·주소·규모·영업 사실 등을 3개월 이내에 관청에 신고하고, 폐업 또는 전업 등에 관한 사항이 포함된 ‘개식용 종식 이행계획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위반 시 3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분될 수 있다. 개사육농장 운영 현황 파악 등 정부 실태조사를 위한 근거 조항도 법안에 담겼다.


‘정당한 보상’→‘필요한 지원’…지원 규모는 미정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개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을 찾아 손등에 그린 우리나라 진돗개 백구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개식용 종식 특별법은 속칭 ‘김건희법’이라 불릴 정도로 윤석열 정부의 주요 입법 과제였지만, 법안 통과를 일단락 지은 정부의 셈법은 여전히 복잡하다. 남겨진 과제들이 산적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숙제는 개식용 관련 업주들에 대한 지원 문제다. 당초 원안은 폐업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업할 경우 ‘정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최종안에선 ‘필요한 지원’으로 표현이 바뀌었다. ‘불법의 소지가 많은 곳들까지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오해할 우려가 있다’(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정부 의견을 반영하면서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입법 과정에서 꾸준히 지적하던 사안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지원 범위와 규모, 방식 등은 대통령령을 통해 결정하는 것으로 남겨뒀다.

개식용 종식 특별법 관련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농장주 측에선 ‘보상’ 문구가 빠진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위원장은 “보상이 없다면 모든 생활 기반을 그냥 빼앗아 가겠다는 소리”라며 “현실적으로 다른 축종으로 전업하긴 어려운 만큼 폐업밖에 답이 없는데, 납득할 만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육견협회는 농장 개 1마리당 최소 200만원의 보상금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는데, 이는 정부의 2022년 실태조사 기준(52만 마리)으로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18일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보상 의무는 과도하다”고 밝혔다.

법안은 폐업·전업 지원 계획 등은 정부 관계자와 개사육농장, 동물보호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개식용 종식 위원회’를 설치해 조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설치돼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개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도 개사육농장과 동물보호단체 간 의견 대립만 이어진 채 아무런 소득을 내지 못하고 유명무실화됐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원 등을 위해 반드시 위원회 합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겨진 개 수십만 마리는…“희생 최소화 방법 고민해야”


동물자유연대가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불법 개농장에 갇힌 강아지들을 구조하고 있다. 뉴시스
농장에서 풀려난 개에 대해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시급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만일 개들을 버려둔 채 폐업해버릴 경우 동물보호법상 동물유기에 해당하고, 강제 살처분을 할 경우 동물학대에 해당하는 만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원론적으로 폐업·전업한 농장주가 남은 개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가당 평균 400여마리의 개를 사육하는 현실에서 농장주들이 남은 개들을 원활히 처리할 방법은 요원하다. 전국 동물보호소 역시 이미 포화된 상태인 만큼 많은 개들이 안락사될 우려가 크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개식용 종식은 모든 동물보호단체들의 염원이었고,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일”이라면서도 “그동안 종식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젠 남은 개들의 희생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3년의 유예기간 동안 개식용 관련 불법적 요소들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동물보호단체들도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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