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전공 안 했어도 환영”…평신도에 교회 맡길 준비 됐나
‘평신도 목회’ 성경적이지만 실현 하려면 훈련부터
서울 중랑구의 A교회를 다니는 B집사는 최근 담임목사로부터 중고등부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교사가 아니라 부서를 책임져 달라는 부탁이었다. 교회는 지난해 말 담당 교역자가 사임했지만, 현재까지 후임자를 뽑지 못한 상태다. B집사는 “담임목사님께서 우리교회뿐 아니라 교단에서도 평신도에게 부서를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설득하셨지만, 생업이 있는 터라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세종시의 C교회도 최근 SNS에 유아부 사역자를 뽑는 구인 공고를 올렸다. “신학 전공이 아니어도 된다”는 문구가 붙어 눈길을 끌었다. 이 교회 D목사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신학생들의 지원이 워낙 없다”며 “유아부의 경우 사역을 돕는 공과 교제가 있고 신학적 깊이보다 교제에 담긴 내용을 전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렇게 구인 공고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충청남도 천안시 백석대학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백석(총회장 김진범 목사) 총회 목회자영성대회에서도 평신도에게 교육부서를 맡기라는 취지의 강의가 참석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예장백석 교회학교위원회 총무인 선양욱 백석대(기독교문화콘텐츠학) 교수는 “최근 교육 전도사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교단 교재를 활용하면 부서를 담당할 교인 1명만 있어도 얼마든지 주일학교 조직이 가능하다”며 “전도 만큼 중요한 것이 주일학교의 존재”라고 설명했다. 선 교수는 “목회자 없이 평신도만으로도 교회학교 조직이 가능하다”며 “다음세대가 없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교회학교부터 조직하라”고 당부했다.
최근 들어 부교역자 사역 기피 현상이 나타나면서 평신도들에게 교회학교 담당 목회를 요구하는 교회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6월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전국의 담임목사 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교육전도사 지원자 상황(수)’에 대한 질문에서 담임목사 대다수(88%)가 ‘지원자가 없다(아예 없다+적다)’고 답했고, 그 중 ‘지원자가 아예 없다’는 응답도 절반(49%)에 육박해 현재 한국교회가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음을 보여줬다.
A교회나 C교회처럼 평신도에게 부서를 맡기는 이른바 ‘평신도 목회’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지만 이 개념이 소개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상복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는 30여년 전 ‘평신도목회연구원’을 설립해 이 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 목사가 처음 평신도 목회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만 해도 반발이 적지 않았다. 김 목사는 “신학 공부 여부를 가지고 목회자들은 시비를 걸었다”며 “그러나 성경은 목사에게만 목회를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목사와 교사의 임무’에 관해 가르치는 신약 에베소서 4장 12절의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는 구절을 지목했다. 그는 “여기서 봉사라는 단어는 본래 의미와 다르다”며 “치명적인 오역이 한국교회의 평신도를 주보 나누고 헌금이나 걷는 단순 봉사자로 격하시켰다”고 했다. 영어 성경의 ‘Work of the Ministry’는 우리말 ‘봉사’보다 ‘목회적 사역’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이어 “목사의 일을 평신도에게 내어주는 것은 기득권 상실이 아니라 본래 성경이 명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한국교회가 평신도 목회에 눈을 뜨고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신도 목회를 하루아침에 도입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평신도 사역 이렇게 하라’(밀알서원)의 저자 정재식 온세대교회 목사는 “밀려서 하는 평신도 사역은 곤란하다”고 경고한다. 정 목사는 “평신도건 목회자건 성경을 아는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는 자리에 가야 한다”며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경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전문가로 육성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날 대부분 교회로하여금 평신도 사역을 도입할 수 없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하루 대부분을 생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이 성경 전문가가 되려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평신도들이 심방과 말씀 나눔, 새가족 교육 등 폭넓은 사역을 감당하는 충청남도 아산시 주안교회(엄명섭 목사)는 성도들을 사역자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성경을 배우는 ‘복음의 기초’부터 교회론까지 모두 수료하려면 적어도 1년 6개월에서 2년이 걸린다. 엄명섭 주안교회 목사는 “종교개혁 이후 만인 제사장 개념이 도입될 때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 성경”이라며 “성도를 목회자에 버금가는 사역자로 길러내려면 그 교회의 상황과 성도들을 가장 잘 아는 담임목사가 직접 교육에 나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쪼그라든 청년 조직 되살려라” 발동 건 예장통합·합동 - 더미션
- 교회학교 학생수 줄어 줄줄이 통폐합… 도심 교회까지 ‘도미노’ - 더미션
- “10년간 매년 5만명 전도”… 교회, 다시 부흥으로 - 더미션
- 조합도 선교의 대상… 소송 전에 차분히 대화부터 - 더미션
- 부어라 마셔라… 선 넘은 취중토크… 유튜브 ‘술방’에 대처하는 기독 청년들의 자세는 - 더미
- 우상 숭배 가득한 섬에, 17년 만에 놀라운 일이…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