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vs 미국의 보조금 혈투 … EU 1조원 풀어 2차전지 업체 미국행 막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신재생에너지 산업 유치를 놓고 '보조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독일이 유럽 최대 2차전지 제조사의 공장을 품게 됐다. EU가 지난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맞서 도입한 '유럽판 IRA'를 통해 보조금 지급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통상 EU 회원국의 보조금 심사가 까다로웠던 걸 고려하면, 거액의 보조금을 특정 국가에 승인한 이번 조처는 이례적이란 평을 받는다. 미국에 관련 산업 주도권을 내주고 싶지 않은 EU의 절박함이 묻어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독일 정부가 스웨덴 노스볼트의 새 배터리 공장 건설에 지원하려는 9억 유로(1조 3000억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승인했다. EU 회원국은 단일시장 공정경쟁 규정에 따라 보조금 지급 전 반드시 EU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독일 정부는 노스볼트에 직접 지원금으로 7억 유로(1조 80억원)를 주고, 2억 200만 유로(2200억원)는 보증금 개념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디지털·경쟁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이 보조금이 미국 IRA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마련된 제도에 따라 처음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며 "EU 보조금 지원이 없었다면 노스볼트의 투자는 대서양을 건너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州)에 건설될 이 공장은 노스볼트가 자국 밖에 건립하는 첫 공장이다. 노스볼트 지난 2022년 이곳에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가, 미국의 IRA 보조금을 이유로 투자 유치를 연기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전기차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면 3690억 달러 상당의 세액공제, 보조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에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옮기려는 움직임이 일자,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미국의 보조금 공세는) 전쟁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후 EU는 지난해 3월 제조 기업이 EU 밖의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보조금과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매칭 보조금 제도’를 급히 도입했다. 핵심 친환경 기술에 대한 투자가 미국으로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한 '맞불' 대응이었다. 이번 노스볼트에 대한 EU의 보조금 지급 승인은 매칭 보조금 제도가 적용된 첫 사례다.
독일 몰아주기, "차별 아닌 경제 안보 투자"
EU 내에선 특정 국가 산업에 보조금을 주면 EU 단일시장이 붕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하벡 부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독일은 유럽 경제 시스템 전체"라며 "독일이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를 못 하면 유럽 경제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EU가 재생 에너지를 미국,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라 상상해 보라. (보조금 지급 승인은) EU 경제 블록 안보에 대한 투자"라고 덧붙였다.
노스볼트는 앞으로 45억 유로(6조 5000억원)를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고, 2026년부터 제품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간 약 100만대에 달하는 전기 자동차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생산 능력을 목표로 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독일 정부는 이 공장 유치로 30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당장 1조원의 보조금으로 배터리 기업의 미국 행을 막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보조금 혈투'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했다. 독일 베텔스만 재단은 보고서에서 "보조금이 향후 어느 시점에서 중단되면 기업이 더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게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독일의 태양광 산업을 예로 들었다. 독일은 태양광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지난 2012년부터 자유 경쟁 유도를 위해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이자 값싼 중국산 모듈 제품들의 유입에 경쟁력을 잃어 관련 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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